임나일본부를통해본 고대 한일관계분석<A+받은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08.09.01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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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학기동안 6명의 조원들이 많은 브레인스토밍을통해 열과성의를다해 만들었습니다.
저희들이 직접찾아서 작성한거라 여기서 판매되는 다른 레포트랑 중복되는내용 전혀없을겁니다.
교수님께도 칭찬받았고 A+받았습니다.
많은도움될겁니다^^
목차
Ⅰ. 서문
Ⅱ. 본론
1. 4~6C 고대한국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국제정세
2. 임나일본부란 무엇인가?
3. 임나일본부에 관한 제학설
4. 역사 자료 근거
Ⅲ. 결론
본문내용
이에 앞서 몇가지를 먼저 일러두고자 한다.
첫 번째, 고대 역사사료를 해석함에 있어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임장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역사가가 고대 역사사료를 읽고 해석함에 있어, 선입견을 가지고 접근을 한다면, 그것은 사료의 해석이 아나리 자신의 주장에 맞추어 사료를 해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지명, 인명, 직명을 읽는데 한국식 음독, 일본식 음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데다가, 특히 고대사에 관련된 부분(法隆寺를 법륭사, 호류지, 호류사등 여러 가지로 읽는 것)에 있어서는 여러 혼란있다. (심지어 천황이란 단어를 심지어 “덴노”라고 음독하는 사람까지 존재한다.) 이에 본 보고서에서 나오는 일본의 지명, 인명, 직명을 모두 한국식으로 음독한다.
세 번째, 본보서는 고대 동아시아에는 지금과 같은 민족감정이 없었음을 전제로 글을 풀어쓰고자 한다. 당시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 남부에는 “한족(韓族)”뿐만 아니라, “예맥족(濊貊族)”, “한족(漢族)”, “왜인(倭人)”등이 공존하고 살았으며,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민족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음은 당연한 것이다.
Ⅱ. 본론
1. 4~6C 고대한국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국제정세
1) 한국
(1) 고구려
4세기 초, 고구려는 중국의 혼란기(5호16국)를 틈타 본격적인 대외정복활동을 전개했다. 313년(미천왕14) 한반도 내의 중국 군현세력을 완전히 축출하고, 이어 전연(前燕)과 요동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치열한 각축을 벌였으며, 남으로는 새롭게 성장하는 백제와 대결하였다. 5세기 후반 고구려의 판도는 서로는 요서지방을 사이에 두고 북위와 대치했으며, 남으로는 아산만과 영덕을 잇는 선까지 밀고 내려가 신라에 강한 영향력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