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요십조 조작설에 대한 반론
- 최초 등록일
- 2008.09.03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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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왕건의 훈요십조의 내용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고 훈요십조 조작설에 대해 반론한 글이다.
목차
Ⅰ. 왕건의 훈요십조 제8조
Ⅱ. 왕건의 훈요십조와 내용
Ⅲ. 훈요십조의 제8조에 관한 논란
Ⅳ. 훈요십조 조작설에 대한 반론
본문내용
Ⅰ. 왕건의 훈요십조 제8조
역사스페셜 “왕건의 훈요십조는 조작되었는가?” 편에서는 이 훈요십조의 10가지 유훈의 내용 중에서 제 8조의 내용에 대해 과연 훈요십조는 조작되었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차령 이남과 공주강 밖은 산과 땅이 모두 배반하니 그곳 사람 또한 배반한다. 조정에 들어오면 변란을 꾀하고 임금이 행차하는 길을 막아 난을 일으키니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벼슬을 주지 말라”
제 8조의 내용을 살펴보면 특정지역 그러니깐 “차령 이남과 공주강 밖의 땅” 이 지형적으로 배역의 땅이므로 그 지역의 사람에 대해서는 벼슬을 줌에 있어서 차별을 두라는 한마디로 지역 차별적인 언급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태조 왕건은 당시에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한 이후에 각 지방의 당시에 분산되어져 있던 호족의 세력을 중앙으로 통합시키기 위해 그러한 각 세력을 회유하는 정책을 썼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들과의 확실한 연합을 위해서 혼인관계를 맺는 등 지역 화합을 위해서 평생에 걸쳐 정책을 펴 온 인물이다. 그런 태조가 과연 자신의 평생의 정책과는 전혀 반하는 특정지역의 차별에 관한 언급을 그것도 자신들의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의 글에 실었던 것일까?
Ⅱ. 왕건의 훈요십조와 내용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죽기 전에 훈요십조(訓要十條) 라는 글을 남겨서 자신의 뒤를 이을 왕들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열 가지 기본 지침을 제시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 글은 왕건이 사망하기 직전인 943년 대광(大光) 박술희를 불러 받아 적게 한 것이라고 한다.
훈요십조의 각 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국가의 대업이 제불(諸佛)의 호위와 지덕(地德)에 힘입었으니 불교를 잘 위할 것.
② 사사(寺社)의 쟁탈 ·남조(濫造)를 금할 것.
③ 왕위계승은 적자적손(嫡者嫡孫)을 원칙으로 하되 장자가 불초(不肖)할 때에는 인망 있는 자가 대통을 이을 것.
④ 거란과 같은 야만국의 풍속을 배격할 것.
참고 자료
1. 김재영, 『한국 역사인물 뒤집어 읽기』, (인물과 사상사, 2001), pp. 52~60.
2. 신정일, 『다시 쓰는 택리지1』, (Humanist, 2004), pp. 279~285.
3. 박기현, 『손에 잡히는 고려이야기』, (늘 푸른 소나무, 2000), pp. 9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