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작가론 II-Park Honan
- 최초 등록일
- 2008.09.18
- 최종 저작일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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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아놀드 작가론(Park Honan)
2. 아놀드 작가론(wiki)
본문내용
아놀드의 옥스퍼드 강의는 좋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었다고 한다. 새벽까지 강의에서 할 말을 채우기 위해 밤을 샌 후에 옥스퍼드에 나갔지만 강의실의 좌석은 반은 비워져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옥스퍼드 학교당국은 강의에서 말수가 너무 적으면 벌금을 내야한다는 경고를 하기도 했다. 튜터들은 그가 전공지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했다. 그는 엘리자베드조를 화려한 문학이라고 주장했고, 페리클레스의(Periclean) 아테네를 가장 완전한 자유를 구가한 시대라고 평가하기도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튜터들은 반발했다고 한다. 당시 아테네에는 노예들이 많았고 선거권자들도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놀드는 이에 굴하지 않고 강의 준비용 논문들을 시리즈로 써내려갔다. “On the Modern Element in Literature"가 쓰여졌고, ”On Translating Homer" 시리즈가 쓰였으며, 세 번째 시리즈는 “On the Study of Celtic Literature"였다. 그는 또한 중간 중간에 Essays in Criticism의 논문들을 강의로 발표했다. 그리고 그가 옥스퍼드에서 마지막으로 한 강의내용은 Culture and Anarchy의 앞부분에 수록이 되었다(292).
제 14 부는 1862년에서 1867년 사이의 기간으로서 그의 나이가 40세에서 45세에 이르는 기간이었다. 이 시기는 Essays in Criticism의 비평문들을 쓰는 시기로 요약된다. 40세의 나이에 그는 Essays 집필에 들어갔고 F. W. Newman 논쟁에도 뛰어들었다. 1862년에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10년이나 위인 Robert Browning을 친구로 맞았다. 프랑스, 독일, 이태리, 그리고 스위스에서 서머싯주 톤턴위원회(The Taunton Commission)를 대신해서 아놀드가 맡았던 미션은 유럽의 고등교육에 대한 서적을 획득, 조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330).
아놀드는 비평의 본질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되면 그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아주 작은 집단(circle)의 하나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적합한 아이디어들이 시류를 타게되는 것은 단호하게 그 나름의 작업을 수행하는 오직 이 작은 집단에 의해서이다. 비평가가 사물에 대해서 더욱 자유로운 사색적 표현(treatment)을 시작하기 원한다면 그는 정치적, 사회적, 인본주의적 영역의 직접적인 실천이 자행되는 지역에서 멀어져 있어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아마도 언젠가는 그것의 이득들이 느껴지게 될 것이다(312).
제 15 부는 1866년부터 1872년까지이며, 아놀드의 나이 44세부터 50세까지의 기간이다. 아놀드는 옥스퍼드대 고별강연에서 그 자신이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자(Liberal)이지만 “경험”과 “단념”(renouncement)에 의해 단련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그는 단순히 문화의 유용성을 탐구하려는 의도 이외에 다른 의도는 없었다. 그가 유지한 정신자세는 도시의 사회생활에서 지적이고
참고 자료
Honan, Park. Matthew Arnold: A Life. New York:
McGraw-Hill, 1981.
Matthew Arnold"/www.wikipedia.org, 21:18, 7 August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