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의 식문화
- 최초 등록일
- 2008.09.27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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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학 레포트 - 일본의 식문화의 변천중에서 에도시대 음식을 조사한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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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본 사람들의 음식 사랑은 에도 시대에도 유별났다. 에도는 도쿠가와 막부가 허허벌판과 같은 상태에서 일본의 중심지로 성장시킨 도시이므로, 그 공사를 위한 노력으로서 남성 인구가 애초부터 여성 인구보다 많았다. 참근교대參勤交代로 자신의 번藩을 잠시 떠나 에도에 머물게 된 번사 藩士, 간사이 지방에서 온 대형 상점의 고용인들, 일을 찾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항상 들끓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가족들과 떨어져 에도에 온 남성들이었다.
에도는 규모만 다를 뿐, 오늘날의 도쿄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에도에 살고 있는 서민들 대부분은 일종의 연립 주택과 같은 공동 주택에 살면서 먹을거리를 생산하기 위한 토지는 소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돈을 주고 구입해야 했다.
그래서 보테후리棒手振り라고 하여 음식의 재료인 모시조갯살이나 낫토納豆, 생선, 채소 등을 어꺠에 메고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파는 상인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식료품을 팔러 다니는 이들은 그날 벌어 그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한편, 상점에 입주하여 일을 하는 데다이手代, 데쓰치코조丁維小僧나 식모 등 고용직 근로자들, 화재로 늘 복구 공사가 끊이지 않았던 에도에는 쇼쿠닌職人(목수․미장이․노무자 등)이라는 장인匠人들이 많았다. 이같은 많은 남성들, 그 중에서도 대형상점의 고용인들이나 돈벌이를 하러 온 사람을 비롯한 서민들에게 금방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인기가 있었다. 또한 쇼쿠닌들은 지나치게 배가 부르면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으므로 적당히 먹은 상태에서 일할 수 있는 이동식 식당이 필요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흔희 보는 ‘포장마차’의 개념이다. 당시의 서민들과 뗄레야 뗄 수 없었던 포장마차의 음식 이야기가 바로 금방 금방 해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와 연결된다.
즉, ‘덴푸라’, ‘스시’, ‘메밀국수’, ‘장어구이’등 모두 포장마차에서 팔기 시작한 음식으로, 소위 에도 서민들의 패스트푸드로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에도 서민들의 음식 ‘패스트푸드’는 아마도 성급하면서도 맛을 아는 에도 번화가의 죠닌들이 스스로 궁리하여 탄생시킨 먹을거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에도 토박이(에돗코) 들은 성질 급하기로 유명하다는 후문이 있다. )
참고 자료
이언숙(2004. 06)『죠닌의 식탁, 쇼군의 식당 에도의 패스트푸드』, 청어람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