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시간형성과 권력규율
- 최초 등록일
- 2008.09.28
- 최종 저작일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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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근형대사를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되는 자료입니다
직접 쓴 글로 A학점 받은 자료입니다
목차
1. 근대적 시간 형성과 규율권력간의 관계
2. 갑오농민전쟁과 갑오개혁 비교
갑오개혁
본문내용
1. 근대적 시간 형성과 규율권력간의 관계
1) 20세기 초에 철도란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라 `근대화` 그 자체였다.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철로를 따라 질주하던 열차를 통해서 조선의 신민들은 새로운 세계를 체험했고, 열차 시간표는 그들의 머리 속에 근대적인 시간 관념을 심어주었다.
분업과 집중이라는 고전 자본주의의 원칙은 철도를 통해서 구체화되었고, 일제는 수탈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반도 전역에 철로를 깔았다.
1906년 경의선을 개통한 것도 한반도 북부의 자원을 본토까지 효과적으로 운반하려는 목적과 1904년 러일 전쟁의 승리로 가시권에 들어온 만주에 대한 영향력을 한층 확대하려는 속셈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였다.
당시 갖은 우여곡절 끝에 건립된 경의선은 일제 시대 내내 남북을 가로지르는 한반도의 척추 역할을 했다. 핍박받던 독립투사들이 비장한 각오로 만주로 향하며 탔던 열차도, 최초의 근대장편소설 이광수의 <무정>에서 정조를 유린당한 영채가 자살을 생각하며 탔던 열차도 모두 경의선이었다.
분단 이후 경의선은 항상 통일의 염원과 함께 이야기되었다. 625당시 폭격을 당한 녹슨 열차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지판과 함께 통일을 위한 민족적 염원의 대표적인 상징물이었다. 어린시절 학교에서 안보 포스터를 그리거나 안보 웅변대회를 할 때 부서진 열차와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지판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소재였다.
그리고 전 국민에게 반공을 학습시키던 시절, 표지판이 서있는 역사는 주변에서 발견된 땅굴과 함께 한번쯤 둘러봐야 하는 장소였다. 당시 군사정권은 국민들에게 땅굴을 견학시키고 간첩 사진과 6·25 당시 전사한 이들의 무덤을 보여줌으로서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오늘 철마를 달릴 수 있게 한 것은 `적개심`이 아니라 `햇볕`이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은 6·15 선언에서 경의선 연결을 언급했고 그 해 9월 18일의 기공식과 2002년 9월 18일의 착공식을 거쳐 어제 연결식을 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