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의 왜구문제와 대일외교
- 최초 등록일
- 2008.10.03
- 최종 저작일
- 2008.08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여말선초의 왜구문제와 대일외교에 관한 글입니다.
이 주제와 관련된 박사논문을 읽으시기전에 참고적으로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쉽다는 이야기)
목차
1. 서론
2. 고려의 대일관계와 왜구침구
3. 조선 초기 대일외교 발전
4. 대일외교의 변화와 대처
5. 결론
본문내용
동아시아의 14세기는 한․중․일 삼국의 외교적 노선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먼저 중국의 원(元)나라가 무너지는 과정 속에서 명(明)나라가 건국되어 전통적인 책봉과 조공을 통한 중화질서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고려(高麗)에서는 외우내환을 겪으면서 조선(朝鮮)으로 왕조교체가 일어났고 이에 원나라와 외교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이 명나라와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일본은 남북조시대의 혼란을 겪으면서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가 권력을 계승한 뒤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을 열고 명나라의 국제질서에 편입되는 분위기를 보였다.
각각 삼국은 시기상으로 또는 방법에 따른 차이는 보이나 새로이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국내의 정치, 사회, 경제 등 복합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면서도 국제적으로도 공식적인 입장을 정하기 위해 인접국가와의 외교관계를 재정립 할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왜구(倭寇)의 문제이다. 왜구의 침구(侵寇)문제는 14세기 이래로 동아시아에서 외교적으로 상당한 마찰을 가져와 이로 인한 문제가 삼국의 외교와 안보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명과 막부는 과거와 달리 책봉관계가 성립되고 통교를 하였고 조선은 세종 이후 안정 국면에 접어들기까지 대일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따라서 고려나 조선의 입장에서 왜구의 문제는 대일외교에 있어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여말선초의 이 기간이 왜구 침구 문제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만큼 외교적으로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는 살펴보도록 하겠다. 또한 이 문제를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등의 침략과 연관성 있게 볼 때 대일외교의 체계를 수립하였던 조선 초기까지의 대일외교는 상당한 중요성을 가지므로 대일외교노선의 변화와 영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2. 고려의 대일관계와 왜구의 침구
고려의 대일외교는 소극적인 관계로써 8세기 말 통일신라와 일본의 국교가 단절된 이래 고려에 들어서도
참고 자료
한문종, 2001, 《조선전기 향화수직왜인 연구》, 경인문화사
손승철, 2006, 《조선시대 한일관계사 연구》, 경인문화사
손승철, 2006, 《조선통신사, 일본과 通하다》, 동아시아
이영, 2007, 《잊혀진 전쟁 왜구》, 에피스테메
나종우, 1996《조선중세대일교섭사연구》, 원광대 출판부
한문종, 1996, 《조선전기 대일 외교정책 연구》, 전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손승철, 2001,〈조선전기 피로·표류민송환과 동아시아 국제질서〉, 《조선시대 한일표류민연구》, 국학자료원
한문종, 2005,〈조선전기 왜인통제책과 통교위반자의 처리〉,《왜구·위사 문제와 한일 관계》, 한일관계사 연구논집4. 경인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