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문학의 대표 면앙 송순의 생애와 작품세계
- 최초 등록일
- 2008.10.19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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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가사문학의 대표 면앙 송순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하여 정리해 놓은 자료입니다.
목차
송순의 생애
시대적 상황과 송순의 위치
송순의 생활 신조
면앙정
송순의 시가
시조문학
가사문학
한시문학
본문내용
2. 시대적 상황과 송순의 위치
송순이 살았던 16세기의 조선조(朝鮮朝)는 시대적 상황이 복잡했다. 큰 외환이 없었다고는 하나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이 사화와 반정으로 이어지면서 내환이 거듭됐고, 파당의 대립이 첨예화되어 위정자와 선비에 대한 피의 숙청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였다. 戊午士禍※(1498, 연산조 4),甲子士禍(1504, 연산조 10), 己卯士禍(1519, 중종 14), 1530년(중종 25년)부터의 김안로의 발호 등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는 세조의 집권, 이시애 난 평정, 남이 및 구성군 정변에 공을 세운 훈공 세력에 기득권을 지키려는 현실주의와 그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재야 사루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려고 유학의 차별 원리를 도구로 하여 내세운 당위론적 명분주의와의 대결로, 유학의 정통을 표방한 김종직 문도들의 도전은 柳子光 등 현실주의 훈공세력의 배척 대상이 되었다.
훈구파와 사림파는 신유학 또는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야 하는 데는 일치했으나 성리학과 문학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해석하는 기준은 서로 달랐다. 훈구파 내지는 사장학파는 성리학과 문학이 둘 다 소중하며 문장 능력을 키워 사장(詞章)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왕조의 사업을 온전히 이룩하고 위엄을 세울 수 있다고 했는데, 사림파 내지는 도학파는 성리학을 도학으로 실천하면서 도학이 근본이며 문학은 말단임을 분명히 해야 문학이 헛된 수식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문학적 자세에 이러한 차이가 나타난 것은 그들의 학문적 자세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대외교상의 필요성과 도덕주의 문학론이라는 뿌리 깊은 사상과의 대립이었음으로 정면에서 이론적 대립이 이루어 질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사장옹호 풍조가 일어나게 된 것은 관료 문인들이 현실적으로 정치의 주도적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종조로부터 사림파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사장학에 치중하던 훈구세력은 일부 사림파의 사장 배격론과 정면 도전을 피할 수 없게 되어 기묘사화를 전후한 시기에 이르러 사장 배격론과 사장 옹호론의 논쟁이 표면화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