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건축사]- 예술과 수공예운동
- 최초 등록일
- 2008.11.02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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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건축사중 예술과 수공예 운동 요약본
목차
1. 예술과 수공예 운동 배경
2. 대표자 윌리암 모리스 연구
본문내용
예술과 수공예 운동
▶ 일찌기 식민지개척에 눈을 뜬 대영제국은 여러 가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수공예에서 탈피하여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등 산업혁명을 일으켜 유럽세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세계 지배를 꿈꾸며 새기술에 의한 발전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려고 1851년 런던에서 제1회 만국박람회를 개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 그러나, 당시 17세의 소년 모리스는 미적 가치가 떨어짐을 크게 실망한 후에 러스킨의 영향을 받아 19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미술공예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는 산업혁명의 결과로 나타난 자연파괴, 기계제품의 범람, 수공기술의 낙후 등을 비판하면서 특수제품에만 이득을 주는 기계를 파괴해야 한다며 사회무질서를 바로잡기위해서 미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선것이다.
1861년 마샬포크너상회를 설립하여 관리자겸 공장장을 겸하면서 벽면장식과 조각, 스테인드 글라스, 금속세공, 가구를 제작하는 등 디자인을 하여 기계에 의한 기쁨없는 노동을 윤리적인 입장에서 비판하였던 것이다.
▶ 그러나 러스킨과 모리스의 기계사용을 거부한 미술공예운동은 벽화나 조각을 고급미술로 생각하여 일상품을 저급으로 본 조형이론에는 근대화에 영향하는 모순성도 있었다.
반면에, 공예를 수준 높은 예술로 여기며 사회개혁운동을 전개시켰으며 이후 독일 공작연맹이나 바우하우스의 조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윌리암 모리스
윌리엄 모리스는 비평가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존 러스킨의 영향을 받아 19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미술공예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 수공예의 부활을 역설하기 위해 순수한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디자인하고자 했던 모리스의 작업은중세기적인 원시 상태로 되돌아 가고자 하는 것이었으므로 르네상스 이래 도입되었던 모든 문명을 거부하는 것과 같아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기는 어려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