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전반기 일제의 문화정치와 부르조아 정치세력의 대응
- 최초 등록일
- 2008.11.05
- 최종 저작일
- 2007.11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1920년대 전반기 일제의 ‘문화정치’와 부르조아 정치세력의 대응
목차
1. 들어가며
2. ‘문화정치’의 제기 배경과 구상
3. 부르조아민족주의 세력의 문화정치 인식과 문화운동론
4. 친일세력의 ‘문화정치’인식과 참정권운동론
5. 나오며
본문내용
이렇게 부르조아세력의 친일화가 나타나고 있었으나 일제는 이들의 세력화는 허용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상황은 일제의 지배를 반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차별에서 예외가 아니고, 총독부의 정책에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할 여지가 없다는 등 불만요인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렇게 일제의 지배에 협력하여 발전을 꾀할 생각이 있으면서 현실적인 참여의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부르조아세력들은 1910년 말이 되면서 시정협력과 친목도모라는 비정치적 성격을 표방한 단체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친일부르조아세력의 구심점을 만들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문화정치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각종 친일단체를 만들었고, 강연회와 언론 활동 등을 통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주축은 한말계몽운동기의 일진회와 대한협회에서 정치운동을 했던 인물들과 일본유학생들이었는데, 이들은 일제의 지배를 세계적 추세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보고 그 체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조선인의 실익을 확보해야한다고 주장하였고, 당면 과제는 일제의 지배를 거부하기 보다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참여에 있다고 보았다. 이는 문화정치는 기본적으로 현대정치의 틀을 갖춘 것이고, 현대정치는 참정의 문제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문화정치는 부르조아 정치의 발현이며, 이러한 정치체제 참여하여 조선의 근대화를 급속히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부르조아세력은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한말 계몽운동기부터 갖고 있던 근대화방법에 대한 소신이기도 하였으며, 문화정치로 인해 정치공간이 확보되자 계몽운동기 정당정치론의 연장선상에서 가장 우선적 현실과제로 정치참여를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친일부르조아의 정치운동은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참고 자료
신주백, 일제의 새로운 식민지 지배방식과 재조일본인 및 ‘자치’세력의 대응(1919~22), 역사와현실39, pp4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