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춘박사
- 최초 등록일
- 2008.11.19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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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장춘박사님의 일생과 업적 그리고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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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장춘박사는 일본 수도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무인 집안 출신의 친일 개화파로 조선 말기에 훈련대 제 2대대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조선의 개화를 둘러싸고 혼란스런 일들을 벌이던 중에 그는 민비 시해사건에 연루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그는 일본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일본여성 사카이 나카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우장춘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 이름을 한국식으로 짓고 서울에 출생신고도 했습니다. 이렇게해서 우장춘은 한국국적을 얻게 됩니다. 우장춘의 어린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한국인 자객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그는 일본인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 때문에 언어, 생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인으로 성장을 했습니다. 우장춘박사님이 평생동안 한국어를 할 줄 몰랐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 나카는 극심한 가난과 차별 속에서도 우장춘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합니다. 우장춘에게 항상 한국인의 긍지를 심어주려고 애썼고 온갖 시련을 잘 헤쳐 나가도록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민들레꽃의 교훈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우장춘박사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 종종 말하곤 했는데 훗날 연구소를 방문한 학생들에게 지금 여기에 있게 된 것은 나의 어머니 덕분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장춘은 소학교를 마치고 히로시마 근처에 있는 구레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 소도시는 바다에 접해있는 군항으로서 일본 해군사관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관생도들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성적이 우수한 졸업생들은 그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장춘은 신체가 허약한데다 성격도 소심하여 사관생도가 되고픈 열망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의 유명한 대학은 모두 국가가 세워서 운영하는 제국대학이었는데, 도쿄제국대학과 교토제국대학이 최고의 명문대였다고 합니다. 우장춘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교토제대가 가까웠으므로 그의 장래 희망은 교토제대에서 공학을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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