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문화의 조선시대 이후 발전사와 세계화방안
- 최초 등록일
- 2008.11.21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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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음식문화의 조선시대 이후 발전사와 세계화방안
목차
Ⅰ. 문화로서의 음식습관
Ⅱ. 음식과 사회 : 사회적 음식과 음식적 사회
Ⅲ. 한국 음식문화의 조선시대 이후 발전사
1.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2. 해방이후~50년대
3. 1960년대
4. 1970~1980년대
5. 1990~현재까지
Ⅳ. 한국음식문화의 세계화
Ⅴ. 결론
본문내용
Ⅱ. 음식과 사회 : 사회적 음식과 음식적 사회
먼저 우리 한국의 음식문화의 발전 과정을 알아보는 것에 앞서 몇 가지의 한국음식에 담겨진 사회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떡이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떡을 맞추는데 쓰라는 떡값이 공공연하게 존재한 적도 있다. 명절에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음식으로는 떡이 으뜸이었다. 또한 떡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각종 의례에 쓰이는 중요한 음식이다. 돌상에는 백설기와 수수떡이 오른다. 백설기는 혹 아이에게 있을지도 모를 재앙을 막고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고자 100명에게 나누어 주었다. 수수떡은 귀신을 막아 준다고 여겨 반드시 아이에게 먹였다. 혼례와 장례에서도 떡은 반드시 준비되었다. 또 이사를 하면 시루떡을 마련하여 이웃에 돌리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에게 떡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음식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떡은 뇌물을 은근하게 말할 때 이용되고 있으니 아이러니 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음식 그 자체가 뇌물로 쓰이는 일도 있다. 1950년대까지 선거 판에서는 표를 얻기 위해 선거 민들에게 막걸리와 고무신을 돌렸다. 그래서 ‘막걸리 선거’니 ‘고무신 선거’나 하는 자조적인 말이 거리낌 없이 오갔다. 짚신이나 맨발로 다녀야 했던 사람들에게 고무신은 정말로 요긴한 물건이었으며 막걸리는 배를 채울 수 있는 긴요한 식량이었다.
음식은 우리 사회의 숨은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의미 체계이다. 어떤 음식을 선호하고 즐기는 가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 사회적으로 처해온 여건에 따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포식의 수준을 넘어서 탐미의 수중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이 수많은 사회적 지위들을 거친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회적 급수에 따라 그 내용은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동네 중국집에서 먹는 자장면과 고급 요릿집에서 먹는 자장면은 비록 요리의 이름은 같지만 다른 맛과 다른 환경으로 인해 그것을 먹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다르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음식에 사회적 의미를 만들어 먹으면서 살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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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AINE N.MCINTOSH ,김형곤, 『미국의 음식문화』, 역민사, 1999
강인희, 『한국식생활사』, 삼영사, 2000
역사신문편찬위원회, 『역사신문 6』, 사계절출판사, 2007
조성오, 『우리 역사 이야기2·3』, 돌베개, 2000
참고 사이트
http://www.osanfood.com 음식문화 길라잡이
http://www.hansbibimbap.com 한스비빔밥
http://www.daom21.com 한국음식문화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