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8.11.25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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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민족의 새로운 시련과 민족 교육의 필요성>
<범정 선생과 혜당 여사의 교육 열정과 단국의 태동>
<단국의 창학 이념>
<교시-교육목적>
<단국의 설립과 발전>
<단국의 저력과 단국인의 도전>
본문내용
<민족의 새로운 시련과 민족 교육의 필요성>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연합국에 항복함으로써 우리는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해방은 일제 식민지 사회 구조를 해체하고 자주적 민족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를 우리 민족에게 제공하였으나 일제라는 강제적 억압 기구가 사라진 정치적 공백 상태를 채운 것은 좌우익의 적대적인 대결과 민족의 분열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민족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또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해방 정국의 혼란 속에도 교육에 대한 열망은 더욱 더 강해졌는데 그것은 젊은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이 바로 조국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민족 분열 후, 미군정 치하의 혼란 속에서도 민족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제도와 학제가 정비되고 교육법이 제정되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근간으로 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입각한 교육이념도 제시되었다.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약화된 민족정신을 앙양하기 위해서 ‘홍익인간’을 교육 이념으로 제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홍익인간’이란 담론은 인본주의라는 보편성과 선민주의라는 특수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교육 열망을 미군정청은 정책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우선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교육 기회의 개방, 평등과 고등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을 위하여 국립 종합대학교를 설치하고 일제하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승격시키며 새로운 대학을 신설하는 등 교육의 양적 확대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미군정청 문교부는 1946년 7월 13일 ‘국립서울대학안’을 발표하였다.
<범정 선생과 혜당 여사의 교육 열정과 단국의 태동>
1947년 단국대학 설립은 범정 장형 선생의 구국 의지와 혜당 조희재 여사의 육영 의지와의 행복한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범정선생은 항일 운동을 전개하면서 교육이 국사의 개명 진보를 성취하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임을 깨달아 외세의 침략적 책동 속에서 국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애국 지도자를 양성해야 됨을 절감하였고, 힘없이 우리의 주권이 빼앗긴 것은 우리의 내부 결속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서라 찾고 민족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서 애국충정 하는 마음은 교육, 특히 자주 독립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생각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