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지학의실현-도산서원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8.11.26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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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과거 우리 나라의 위기지학 교육과 관련하여
도산서원을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목차
1. 도산서원의 유래
2. 도산서원의 세부기관
서원에 대하여
1. 서원의 전개
2. 서원의 교육
3. 서원의 사회적 기능
4. 서원과 성리학
5. 서원의 도서관 기능
6. 서원의 운영
7. 서원의 제향의식
질의와 응답
서원교육이 현대 교육에 주는 시사점
본문내용
1. 도산서원의 유래
도산서원은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학자이신 퇴계 이황 선생이 명종16년(1561)에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직접 지어 이곳에서 인격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강론을 통해 나라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 아주 바르고, 참되고, 양심있는 인재를 많이 길러낸 사학(私學)의 원천으로, 요즘 같으면 사립학교와 같은 교육의 전당이다. 도산서당이 서원건물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을 보아도 선생의 소박함을 알 수 있다.
선생이 돌아가신 4년 후인 1574년에는 제자들과 유림들이 힘을 합해 후학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뒤편에 선생을 추모하고, 선생의 학문을 이어받기 위해 도산서원을 건립하였으며, 그 다음해인 1575년에는 선조 임금께서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현판을 하사하시어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1969년에는 사적 제170호로 지정하여 선생의 학문사상과 애국심을 기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총98,296평)
명종 임금께서는 퇴계 선생이 보고 싶어 화가를 시켜 도산의 그림을 그려오도록 했고, 정조 임금께서는 평소에 선생을 흠모하여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하여 어명을 내려 특별과거인 도산별시(陶山別詩)를 보여 시상하였으며, 공자의 77대 종손인 공덕성 박사는 상덕사(常德祠)를 알묘한 후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는 휘호를 남겼는데, `퇴계 선생을 추나라의 맹자, 노나라의 공자와 같이 대학자이고, 성인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 도산서원의 세부기관
-시사단 : 서원의 맞은편 강 건너 석축 위에 있는 건물이다. 정조 16년(1792년)에 정조께서 규장각 각신(閣臣) 이만수(李晩秀)를 도산서원에 보내어 과시(科試)를 보인 곳이다. 정조 임금께서는 선생을 추모하고 가상(嘉賞)하는 뜻에서 제문(祭文)을 친히 지어 서원에 제사(祭祀)를 올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