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작가론-윤선도
- 최초 등록일
- 2008.11.30
- 최종 저작일
-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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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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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머리말
Ⅱ.본문
1)고산 윤선도의 생애
2)작품
3)윤선도의 자연관
Ⅲ.맺음말
본문내용
Ⅰ.머리말
윤선도(1587~1671)는 시조문학의 최고봉이라 흔히 일컬어진다. 그는 시조 75수, 한시 356수 등 많은 글을 남겼는데, 그 중 대부분이 귀양과 은둔 생활에서 자연 가까이에서 지은 것으로 그의 삶에서 자연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고, 자연을 노래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계의 진출을 희망했고,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제부터 윤선도에 대한 생애, 작품, 그리고 그의 자연관을 살펴보며 윤선도에 대해 한층 더 다가서 보기로 한다.
Ⅱ.본문
1)고산 윤선도의 생애
고산은 1587년(선조 20)에 서울에서 태어나 1671년(현종 12) 85세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불우했으나 문학적으로는 뜻 깊은 한 평생을 살다 갔다. 그의 몸집은 작고 체질도 연약한 편이었으나 어려서부터 엄숙하고 단정한 몸가짐을 가진 선비로서 평생토록 《소학》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한다.
고산은 윤유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큰집에 손이 없어서 윤유기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고산은 17세에 남원 윤씨 돈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그해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소과의 초시에 해당하는 승보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21세에는 장남 인미를 낳았다. 그러나 이듬해에 양어머니를 잃고 또 다음해에는 자신의 생모를 잃었다. 26세 봄에는 진사시험에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며 9월에는 차남 의미를 얻었다.
그가 30세 때에 이이첨의 무리들이 광해군을 업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상소문을 올려 온 나라에 경종을 올렸는데, 이 일로 하여 양부인 유기는 관찰사의 벼슬이 떨어지고 고산도 이듬해에 함경도 경원으로 귀향살이를 가게 되었다. 그가 33세 때에는 나라의 기밀을 가진 선비들과 내통할까 두려워 경남 기장으로 옮겨졌다가 부친 유기의 부음을 들었고 37세 3월에에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비로소 풀려났으니 6년 4개월 동안의 귀양 살이였다.
참고 자료
윤성근, 윤선도 작품집, 서울 : 형설출판사, 1982
황패강 외, 한국문학작가론 2, 서울 : 집문당, 2000
원용문, 윤선도문학연구, 서울 : 국학자료원, 1992
정병헌 ․ 이지영,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파주 : 돌베개,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