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8.11.30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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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에 관하여 쓴글입니다.
정신대에 대한 설명과 여러 자료가 들어있습니다.
목차는 생략하겠습니다.
목차
Ⅰ. 정신대
1. 정신대의 사전적 정의
2. 역사적 배경
3. 모집과 동원
4. 정신대의 활동
본문내용
Ⅰ. 정신대
1. 정신대의 사전적 정의
정신대(일제강점기역사)란 일제가 전쟁 수행을 위해 동원한 여성 종군위안부와 근로정신대를 말한다.
2. 역사적 배경
한일합병이 된 1910년부터 조선 여성을 일본으로 팔아넘겨 매춘행위를 시키는 일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그뒤 1932년 상하이 사변[上海事變]이 일어나고 일본군의 강간행위가 빈발하자 그 대책으로 오카무라 야스지[岡村] 중장은 나가사키[長崎]의 지사에게 군대위안부 유치를 요청했는데, 이것이 공식적으로는 전쟁터에 위안부를 끌어들인 첫 시기로 보여진다. 그후 1937년 난징[南京] 대학살 사건 때 일본군이 일반시민을 강간하는 포악행위가 드러났으며, 성병을 예방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종군위안부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특히 조선 여성이 전통적인 유교교육 등으로 성병의 위험이 없으리라는 판단으로 미혼의 조선 여성을 종군위안부의 적절한 대상으로 정했다. 근로정신대의 경우는 전쟁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제사·방직공장 등에 조선 여성을 동원하여 노동력을 착취했다.
3. 모집과 동원
중일전쟁이 전면전쟁으로 확대된 후인 1937년 8월 24일 일본은 각료회의를 통해 `국민정신 총동원 실시 요강`을 가결했다. 이 국민정신 총동원에 따라 여성의 활동이 장려됨으로써 여성의 전쟁 참여가 촉진되었다. 1941년 11월 `국민근로보국 협력령`에 따라 14~25세의 여성에게 연간 30일 이내의 국민근로보국 대협력활동을 하도록 했다. 1942년 8월 국민징용령 제2차 재정에 따라 여성의 징용은 법적으로 가능하게 되었으나 자주적 참여를 원칙으로 여성의 근로동원이 실시되었다. 1943년 9월에는 17개 직종에 관한 남자취업이 제한 또는 금지되고 여성을 취업하게 함과 동시에 일제는 `여자 근로동원 촉진에 관한 건`을 결정, `여자근로정신대`를 자주적으로 편성시켜 모든 여성의 동원을 도모했다. 정신대는 1~2년간에 걸친 장기동원이었다. 1944년 8월 `여자정신대근무령`이 공포됨으로써 1년 동안의 정신근로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 여성에 대해서는 국민등록이 시행되지 않아 원칙적으로는 법적 강제력을 갖는 징용은 행해지지 않았으나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이 행해졌다.
1941년 12월 이후 조선에서의 여자몰이가 본격화되어 지원과 동원을 위한 강연회와 회의가 계속 이어졌다. 1942년 5월 발송된 `제2차 특별요원 진출에 관한 조회`라는 문서에 의하면 병사 29~35명당 1명의 군대위안부가 계획되어 그 수를 배당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참고 자료
한국 정신대 대책 협의회 홈폐이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