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삼국의 불교의 특징 - 화엄사상, 호국불교와 왕권강화
- 최초 등록일
- 2008.12.02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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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종교에 관해, 특히 삼국시대의 삼국의 불교와 그 중 신라의 불교에 관한 리포트
목차
삼국시대 불교수용
1. 고구려
2. 백제
3. 신라
신라불교의 과정
1. 진흥왕
2. 원광
3. 자장
신라 화엄사상
1. 화엄경과 화엄사상
2. 원효
3. 의상
신라 불교와 왕권강화
본문내용
#백제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12년 후인 384년에 중국 동진의 강남불교가 백제에 전래되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에서는 침류왕 원년(384) 9월에 호승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왔다. ‘호승’이라는 호칭으로 보아 인도의 승려이거나, 중앙아시아 출신이라고 생각되는 마라난타를 백제왕은 궁중으로 맞아들여 예경함으로써 백제불교가 시작 되었다.
백제는 침류왕 원년(384) 7월 진(晋)에 조공했다고 하니 아마도 귀국길에 마라난타도 조공사절단과 함께 백제에 온 것이라 생각된다. 마라난타가 동진으로부터 오자 백제왕이 교외에까지 나가 맞아들였다는 <해동고승전>의 기사가 그러한 추정을 가능케 해주고 있다. 또한 백제에서는 그를 궁중에 모시고 받들어 공양하면서 그의 설법을 들었는데, 위에서 임금이 종하하고 아래서 신하들이 깨우쳐 불사를 크게 일으키고 다같이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봄에는 한산에 절을 짓고 열 사람을 출가시켜 마라난타를 받들게 했다.
이와같은 왕실의 적극적인 예우로 볼때, 왕실의 입장에서는 마라난타의 신통력과 주술에 의지하여 왕실의 안녕을 빌고자 했을 것이다. 아울러 재래신앙을 대신하여 전란기의 동요하는 민중을 통제할 새로운 지배이념으로서 불교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시기에 백제는 고구려와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편, 마라난타가 떠나왔던 중국의 동진 역시 북쪽의 전진과 대립을 계속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동진으로부터 건너와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의 행위는 결코 개인적인 전교행위로 생각되지 않는다. 비록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순도처럼 왕사로 명시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해동고승전>에 씌어진 대로 백제왕이 교외에까지 나가 맞아들일 정도라면 동진왕으로부터의 공식적인 문화교류 사절과 같은 지위라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참고 자료
신라 화엄사상사 연구
한국의 선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