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학의 생애
- 최초 등록일
- 2008.12.10
- 최종 저작일
-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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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용학의 생애 및 그의 작품 연보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요약적인 설명이 중심입니다.
목차
1. 장용학 생애와 작품
2. 장용학적 특징의 배경
본문내용
1. 장용학 생애와 작품
◈ 1921년 4월 25일 함경북도 부령군 부령면 부령동 357번지에서 출생
가.
부친은 장지원(張志遠)으로 1884년생이고 모친은 박숙자(朴淑子)로 1887년생이며 본관은 울진이다. 형 장용봉은 사업을 했으나 요절했고, 누나가 이북에 남아 있으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누나의 이름은 장옥선으로 1912년생이고 매부의 이름은 윤도송으로 1909년생이다.
◈ 1940년 경성공립중학교 졸업
◈ 1942년 일본 와세다대학 상과 입학
후에 장용학의 소설 속 한자 사용에 대한 원인의 하나로서 지적된다.
◈ 1944년 재학 중 학병으로 징집 입대하여 중퇴
가.
군대시절 해외로 파병되지는 않았으며 제주도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그 자신의 회상에 의하면 송요찬이 당시 그의 부대에 오장으로 있었다.
◈ 1945년 해방을 맞아 귀국
◈ 1946년 6월 청진여자중학교 교사 취임
가.
청진의 지방 문단에서 김진수, 소천 등과 어울려 학교 연극의 각본 연출 따위를 맡아서 그 당시 당의 문화부에 있던 김지수에게 허가를 맡고 지도 받기도 했다.
◈ 1947년 9월 월남
가.
전후문학의 중요한 현상중 하나는 이북에 고향을 둔 월남 작가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이며 당연히 고향 상실이라는 문제는 전후문학을 이해하는 데 한 근원점이 된다. 그의 월남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지만 뜻밖에도 말년의 그는 한 서류에 그것을 ‘단순월남’이라고 썼다. 이념 및 체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인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쓴 이력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1950년대의 한 회상기에서 그는 “해방 다음 해 문학을 하겠다고 월남 상경하여 우선 도서관을 찾았다”라고 쓰고 있으므로 월남 시기 및 동기가 서류 내용과 거리가 있다. 이후에는 월남한 이유가 ``공산주의가 싫고, 희곡을 쓰고 싶어서``였다고 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박창원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