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부인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8.12.15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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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참고문헌 뒤져가면서 열심히했던 리포트입니다.
졸업하는 김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리는 것이니 희소성의 가치는 있겠지요.
목차
1. 원전
2. 문학적 접근
2.1 수로부인의 무속적 해석
2.1.1 당대 사회상과 무속
2.1.2 수로부인은 샤먼
2.1.3 무속적 관점에 입각하여 본 <헌화가>와 <해가>
2.2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립적 측면에서의 상징
2.2.1 노인
2.2.2 용
2.2.3 남편 순정공
2.2.4 수로부인의 여성성 부각
2.3 수로부인의 불교적 해석 ( 헌화가를 중심으로 )
2.3.1 불교에 관한 이야기...
2.3.2 풀어보면...
3. 역사적 접근
3.1 성덕왕대 통일신라의 모습
3.2 부인이라는 칭호
3.3 순정공과 수로부인의 실존성
※ 참고문헌
본문내용
2. 문학적 접근
2.1 수로부인의 무속적 해석
2.1.1 당대 사회상과 무속
<삼국사기>에서는 나라 동쪽 고을에 기근이 심해서 백성이 유랑하기 때문에 사자를 파견해서 구제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 해가 705년(성덕왕4)이다. 백성이 유랑했다는 것은 부드러운 표현이고, 실제로는 민란이 일어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으므로 순정공을 파견해서 진압하고 수습한 것이 사태의 진상이 아닌가 한다.
신라의 지배층은 불교를 최고이념으로 삼고 유교의 제도를 채택했으나 무속을 버린 것은 아니다. 위기를 타개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때에는 굿을 했다.
2.1.2 수로부인은 샤먼
<삼국유사>에서는 순정공이 부인과 함께 갔다는 것을 긴요한 사실로 들었다. 부인 때문에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진 데 관심을 가지게 했다. “물길”을 뜻하는 ‘수로’라는 기이한 이름을 가진 부인은 용모가 아름다워서 궁벽한 곳을 지날 때마다 귀신 따위에게 앗긴 바 되었다고 했다. 이 점은 수로부인이 무당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자아내게 한다. 소란한 민심을 남편은 국가권력으로, 부인은 신통력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두 사람이 함께 갔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헌화가>와 <해가>는 굿을 하면서 부른 굿노래일 수 있다. 두 번이나 등장하는 노인도 굿에 등장한 가공의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굿을 여러 차례 했을 것이며, 꽃거리라고 이름 짓고 싶은 대목에서는 <헌화가>를, 용거리라고 해야 할 대목에서는 <해가>를 불렀다고 보면 전후에 있었던 일을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굿노래야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나라에서 보낸 무당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했기에 향가에 편입되거나 한역되어 남아 있는 예외적인 처우를 받은 듯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