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방략(方略), 사고전서(四庫全書)의 편찬
- 최초 등록일
- 2008.12.18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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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방략(方略)』, 『사고전서(四庫全書)』의 편찬에 대한 내용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2. 방략(方略)
3. 사고전서(四庫全書)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청은 대만을 평정하여 입관 이래 비로소 전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이후 문화 사업에 주목하여 지식인들을 농락하고자 했다. 그 방법은 문자옥을 일으켜 고압적인 통치 수단을 취하거나 대규모의 도서를 발간하여 회유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강희 이후 규모가 큰 도서들이 칙찬(勅撰)되어 그 수가 40~50여 종에 달한다. 그 가운데 여기서는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방략(方略)』, 『사고전서(四庫全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Ⅱ. 본론
1.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강희 40년(1701) 10월에 시작하여 5년 후 4월에 초고가 완성되었다. 일을 맡았던 진몽뢰(陣夢雷)는 강희의 셋째 아들 성친왕 윤양을 시종하였다. 진몽뢰(陣夢雷)가 5년 만에 『고금도서집성』의 초고를 완성하게 된 것도 성친왕의 지지와 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책명은 『고금도서회편』이었는데 강희제가 이를 보고 『고금도서집성』으로 개명하였으며, 관(館)을 열고 대대적으로 보완을 시도함으로써 강희제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완성되지 못했다. 옹정제가 즉위한 후, 성친왕을 비롯하여 형제들을 탄압하였고, 이로 인하여 진몽뢰도 변방으로 유배되어 도서 편찬은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옹정제는 강희제 칙찬으로 바꾸어 계속 편찬하게 하였고, 그 결과 옹정 3년(1725)에 완성되었다.『고금도서집성』은 완성된 다음 네 차례나 간행되었다.
『고금도서집성』은 모두 1만권으로 여섯 개의 대류(大類), 32문(門), 6109개의 자목(子目)으로 구성 6회편(編) 32전(典) 6,109부(部)로 표현하기도 함(신승하, 『중국사학사』,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0, p. 303.)
참고 자료
서정흠 편저, 『중국사학사』, 중국사학사연구실, 2008.
신승하, 『중국사학사』,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0.
심규호,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도서출판 일빛,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