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발해의 두 공주, 정효공주와 정혜공주를 비롯하여 발해의 여성, 발해의 여전사 전설, 발해 유민의 부흥운동, 그리고 발해의 구성종족이 말갈족인지 아닌지의 여부 등 발해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수록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정혜공주, 정효공주 묘
2. 발해의 여성
3. 발해의 전설 - 홍라녀 전설
4. 발해 유민의 부흥운동
5. 발해국 주민의 대다수는 말갈족인가?
본문내용
정혜공주 묘는 1949년 길림성 돈화시 육정산에서 발굴되었으며, 정효공주 묘는 1980년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발견되었다. 두 무덤에서 발견된 가장 중요한 유물은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묘지명이다. 이를 통해 무덤 주인은 발해 제 3대 왕 문왕의 둘째 딸 정혜공주(738~777)와 넷째 딸인 정효공주(757~792)임이 밝혀졌다
중략
현재 중국은 동북공정을 내세우며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라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발해의 대다수가 말갈족이라 한 『신당서』를 비롯한 중국 사서를 들고 있다. 즉 발해는 말갈족의 나라이니, 당연히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발해에 대해 가르칠 때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은 말갈족이라 하여, 소수의 고구려인이 다수의 말갈족을 다스리는 형태라고 가르치고, 또 그렇게 배워오고 있다. 그러나 최신 연구성과에 의하면 주민의 대부분은 말갈이 아닌 고구려 유민이었다고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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