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 김만중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9.01.09
- 최종 저작일
-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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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포 김만중(1637~169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로 본관은 광산, 아명은 선생(船生), 자는 중숙(重淑), 호는 서포(西浦),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이고,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이며, 숙종의 장인인 광성부원군 만기의 아우로서, 숙종대왕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의 숙부이다. 유복자인 탓에 어머니의 남다른 가정교육에 힘입어 성장하였다. 김만중은 1665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수찬 등을 역임하고 암행어사로 활동한다. 그러나 임금 앞에서 직언도 불사하는 강직성으로 관직을 삭탈당하고 `김金`씨 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벌을 받기도 했다. 이후 예조참의로 복귀하여 대사헌을 거쳐 대제학에까지 오르는 등 7년간은 전 생애를 통한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나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고 장희빈을 세우려 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남해에 유배당한다. 유배지에서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쓴 것이 `사씨남정기`다. 이러한 와중에 그의 어머니 윤씨는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던 끝에 병으로 죽었으나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남해의 유배지에서 56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목차
1. 서포 김만중(金萬重)
2. 시대적 배경과 사상적 입장
3. 문학사상
1) 우리말 문학의 중요성
2) 창작과 비평의 구별
3) 민족문학에 대한 인식 전환
4. 김만중의 문학 외적 연구- 종교사상과 자연과학
1) 김만중의 종교사상적 내면
2) 천문학을 통한 우주의 이해
5. ≪서포만필(西浦漫筆)≫
6.『구운몽(九雲夢)』
1) 창작동기
2) 주인공의 이름에 반영된 주제 의식
3) 구운몽적 환상의 의미
4) 주제와 사상적 배경
5)『구운몽』의 사상에 대한 설(說)
6)『구운몽』의 주제와 공감 요소
7.『사씨남정기(謝氏南柾記)』
1) 작품의 배경
2) 목적의식적 문학으로서의 고찰
3) 구성
4) 인물의 설정
5) 한계
6) 문학사적 의의
7) 불교적 관점에서 본 『사씨남정기』
8. 결론
본문내용
김만중은 말이 절주를 가지면 문학이라고 하여, 말이 있으면 반드시 문학이 존재한다는 사실로써, 문학의 보편성을 입증하고 문학을 한문학으로 한정하려는 편견을 논파했다. 이러한 주장으로 문자로 기록된 것을 넘어 구비문학까지 문학으로 인정하게 된다.
1) 우리말 문학의 중요성
김만중은 문학이란 우리말로 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문을 배워서 시문을 짓는 것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은 허위(앵무지인언)라고 하여 우리말로 된 문학이 진실하다고 했다. 문학을 평가하는데 있어 사대부의 문학이어서 고귀한가 아니면 일반백성의 문학이어서 천박한가의 기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된 문학인가 아니면 남의 나라 말을 배워서 된 문학인가 하는데 따라 진실과 허위를 판정하는 것도 중요한 기준이라고 했다. 이 기준에 따라 민요의 가치를 평가했다. 물론, 김만중은 사대부의 문학을 옹호하는 신분적 입장을 버리지 않았지만, 이와 함께 우리말로 된 문학을 존중하는 민족적 입장을 지녔기 때문에 민요의 가치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바탕으로 김만중은 송강 문학을 예로 들며 국어국문학의 가치를 인정했다. 송강의 가사를 한문으로 번역하면 아름다움이 사라진다고 했다.
2) 창작과 비평의 구별
또한 김만중은 가상을 제거하고 실상을 파악하는 것을 특히 중요시했다. 이들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 ‘본지풍광’, ‘본래면목’과 ‘권리풍광’, ‘지상면목’이었다. 가상을 파괴하고 실상을 드러내도록 하는 선가의 용어를 빌려온 것인데, 김만중은 권리풍광을 믿지 않고 본지풍광을 찾아내고자 했던 사람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상에서 벗어나 실상에 이르려고 한 탐구와 비판정신이다. 김만중은 창작과 비평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창작 경험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는 것은 가상에 머무르는 태도이며, 객관적인 비평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학작품에도 본지풍광이 있는데, 이는 주관적인 취향이나 기분을 버려야만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참고 자료
인터넷자료 참조, 소설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