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람교향곡>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09.01.24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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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하이든의 <놀람교향곡> 감상문
목차
1. 작곡자
2. 시대적 배경
3. 곡의 형식 및 특징
4. 연주 형태
5. 감상(제2악장)
6. 형식주의 음악으로서의 의미
본문내용
1. 작곡자
Haydn, Franz Joseph 하이든 (1732.3.31~1809.5.31, 오스트리아)
(1) 생애
오스트리아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수레를 만드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5세 때 친척인 초등학교 교장이자 교회음악가인 프랑크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1740년 빈의 성 스테파노 대성당의 소년합창대에 들어간 그는 당시의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총애를 받았으나 49년 변성기에 들어가자 합창대를 나와 그때부터 빈에서 자유롭기는 하였지만 불안정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생활이 59년까지 10년간이나 계속되고 그 동안의 자세한 경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하는 한편, 어느 시기에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인 N.포르포라에게 작곡을 배우기도 하고 음악 애호가인 귀족 툰백작부인의 하프시코드 교사가 되기도 하였으며, 오스트리아의 귀족 퓌른베르크남작 집안의 실내음악가로 고용되기도 하였다 한다. 또 스테파노대성당 등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가수로서 예배 주악에 참가하기도 하였으며 밤에는 세레나데악단에 참여하여 빈 거리로 나와 돈을 버는 일도 하였다. 이처럼 고생을 하면서 음악과 더불어 살아간 그 는 10년 후인 59년 마침내 보헤미아의 모르친 백작 집안 궁정악장에 취임하였다. 보헤미아에 부임한 하이든은 그 곳에서 초기의 교향악과 관악합주인 디베르티멘토를 작곡하였다. 그러다가 백작의 집안 재정상태가 핍박하여 악단이 해산되는 바람에 다시 실업자가 되어 빈으 로 돌아왔고, 60년 11월 가발업자의 딸 마리아 안나 켈라와 결혼하였다.
61년 5월 1일 하이든 은 헝가리의 귀족 에스테르하지후작 집안의 부악장에 취임하였다. 당시의 악장은 G.베르나였으나 그가 사망한 66년부터는 하이든이 명실상부한 그 곳 악장으로 승진하였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집에서는 하이든이 90년까지 거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충실한 악장으로 근무하였다. 90년 9월 그가 오랜 세월을 모시던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후작이 사망하자 그는 명예악장이라는 칭호를 받음과 함께 그 직을 물러나 빈에서 살았다. 이 무렵 독일의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런던에서 오케스트라를 거느리고 성공을 거둔 J.D.잘로몬의 권유로 그는 영국으로 건너갔다.
참고 자료
(현대인을 위한)명곡 해설, 세광편집국, 세광음악출판사, 1984.
(음악 애호가를 위한)클래식 명곡 해설, 삼호출판사, 1986.
서양음악의 유산Ⅰ, 김학민, 예솔, 1993.
The Great compo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