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답사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09.02.01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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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반도 최대의 보물창고인 경주를 답사한 후기를 적은 답사보고서
목차
대릉원
첨성대
안압지
분황사와 황룡사지
석굴암
불국사
괘릉
남산
이견대와 대왕암
감은사터
국립경주박물관
본문내용
마지막 전공 답사 지역은 경주였다. 경주는 한반도에서 유물 ․ 유적이 가장 많은, 도시 자체가 말 그대로 ‘보물창고’나 다름없는 지역이다. 초등학교 4학년쯤에 가족들과 경주여행을 한 경험이 있는데, 진짜 핵심 중의 핵심 유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곳들만 다니는 데도 2박3일이었다.(석굴암, 불국사, 계림, 포석정, 대릉원, 안압지 정도로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따라서 이번 답사의 일정은 그 답사지의 수만 봐서는 정말 빡빡하기 이를 데 없게 계획되어 있었다(물론 각각의 답사지 간의 거리가 가까워서 이동 시간으로 소비되는 시간이 거의 없었지만). 하지만 마지막 답사이니만큼, 그리고 보물창고인 경주를 답사하는 것이니만큼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열심히 알려고, 또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새로이 알게 된 흥미로웠던 사실들과 개인적으로 느꼈던 감흥들을 적어 내려가 보려한다.
대릉원 어릴 때 경주에서 왕릉들을 봤을 때는 그저 동산만큼이나 크구나하고 그 크기에만 놀랐을 뿐이었다. 오늘날 다시 보게 되니 ‘고등학교 때 달달 외던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이구나.’, ‘입구가 없으니 큰 동산처럼 보이는구나.’, ‘도굴은 결코 불가능하게 생기긴 했다’ 싶었다. 그 정도 규모의 무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이 되는, 신라의 고대국가체제로의 이행 상황을 막연하게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규모뿐만 아니라 무덤에서 출토되는 다량의 껴묻거리들이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된 그 모습을 직접 보니 사료적 ․ 문화적 ․ 예술적 가치가 새삼 감탄스러웠다.(출토된 양이 워낙 많기도 해서 더욱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첨성대 나는 그동안 동양최대 천문대로서 신라의 천문관측 기술의 우수함을 상징하는 정도로만 첨성대를 이해해왔었다. 하지만 그것이 설치된 본질적인 의미, 즉 선덕여왕이 여왕으로서 권위를 잃지 않으려는 정치적인 맥락을 들을 수 있었다. 역사 속에서 왕실을 주체로 추진되었던 과학기술연구는 사실 그 자체의 기술적인 측면보다도 정치적인 의도가 매우 강하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조선 세종이 갑인자와 같은 활자를 개량하고 각종 천문학적 기구를 발명하도록 한 것도 모두다 정치적인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