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의 양식적 특질 및 전개, 문학사적 의의.
- 최초 등록일
- 2009.02.05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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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판소리의 양식적 특질 및 전개, 문학사적 의의에 관해 2매 내외로 간단히 정리한 글입니다.
시험준비나 간단한 레포트로 쓰기에 좋습니다.
목차
*판소리의 양식적 특질*
*판소리의 문화사적 전개*
*판소리의 의의*
본문내용
*판소리의 양식적 특질*
판소리는 서사적 내용을 창곡에 실어 연창하는 예술로서, 17세기 말엽 혹은 18세기 초 무렵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서사무가나 서사민요와는 다르게, 판소리는 의도적인 창작물이어서 기교가 발달하고 이론이 뒤따르게 되었다. 서사무가는 거의 다 무당이 앉은 자세로 스스로 반주를 하면서 구송창을 하는데 그치지만, 판소리는 광대가 일어서서 고수의 반주에 따라 온갖 몸짓을 하면서 부르는 연희창인 것이 커다란 차이점이다. 광대는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다채롭고 흥미로운 재주를 개발해야 했다. 따라서 판소리는 복잡하고 세련된 서사시로 자라났으며, 민속 연희의 여러 형태 가운데 특히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판소리는 전라도 지방에서 서사무가를 개조한 데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전라도의 세습무는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계승되고, 아들 또는 남편인 남자 쪽은 굿하는 것을 거들면서 악공 노릇을 했다. 광대나 고수가 전라도가 아닌 다른 지방에서 나타난 것은 판소리가 널리 인정을 받게 되면서부터이다.
판소리가 형성된 시기는 분명하게 알기 어려우나, 18세기 초반인 숙종말, 영조초 무렵이라고 보는 추정이 유력하다. 송만재가 1843년에 지은 ‘관우회’라는 시에 의하면, 판소리는 그때까지도 가곡․가사 등의 노래, 줄타기․땅재주 등의 곡예와 함께 공연되었다. 그런 것들에 이어서 ‘본사가’라고 하는 판소리가 시작되자 구경꾼들은 기장을 하더라고 했으니, 판소리의 인기는 확인할 수 있다. 판소리가 열두 마당으로 늘어났다는 증거도 거기서 처음으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판소리가 조선 후기에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급격한 사회 변동 과정에서 양산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생동감 있게 포착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완성된 형태의 판소리는 광대와 고수 두 사람이 공연하면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게끔 조직화되어 있다. 광대는 부채를 하나 들고서 ‘너름새’라는 이름의 연기를 다채롭게 보이며, 특히 장면 묘사를 아주 실감 있게 한다. 고수는 북으로 장단을 맞출 뿐만 아니라, 추임새라고 하는 감탄사를 이따금씩 내놓아 광대의 흥을 돋우고, 청중의 반응을 대변한다. 작품의 사설을 엮어내면서 평면적인 서술에 머물지 않고 서사시에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장면화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참고 자료
한국문학통사3-조동일/지식산업사
조선후기, 시가문학의 문화담론 탐색-성무경/보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