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시대의 가단과 가객으로 유명한 김수장과 김천택, 그들의 가객으로써,
가단으로써의 활동, 그리고 해동가요와 청구영언을 편찬한 자로써의 삶을 분석한 것입니다.
목차
1. 당대의 시대적 배경
2. 가객과 가단의 개념
3. 김천택(金天澤, ?~?)
4. 김수장(金壽長 1682~?)
5. 재해석 및 재창조 사례
6. 교육적 접근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당대의 시대적 배경
봉건 사회의 해체가 진행되어 가던 조선 후기는 농업 등에서 활발히 전개된 생산 활동에 힘입어 농촌사회에서 계급의 문화가 촉진되었고,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서는 활발한 유통과 화폐관계가 매개된 상업의 발전으로 새롭게 경제력을 획득하는 계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지배 계급이었던 사대부들과 함께 예술의 주요 향유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새로이 등장한 문화 향유층은 대체로 중인 서리의 신분으로 지배계급인 사대부의 의식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사대부 층과 일반 평민의 사이에 위치해 있었으며, 그들의 사회 경제적인 처지 또한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자기들 스스로를 여항인이라 칭하며, 독자적인 위상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전문적인 가창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 가창활동과 함께 가집의 편찬사업을 진행했던 것이다. 또한 이들은 때로는 자신들의 예능을 인정해 주는 사대부들과 함께 활동하기도 했고, 비슷한 신분적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집단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2. 가객과 가단의 개념
(1) 가객(歌客): 우리나라 전통 가악 중 가곡, 가사, 시조를 직접 창작하거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
시조는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읊으며 즐기는 문학에 그치지 않고 일정한 곡조에 얹어 노래로 부르도록 되어 있는 음악이면서 문학이기도 하기에 더욱 인기를 끌었다. 노래는 작자 자신이 부르기보다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맡겨서 부르도록 하는 경우가 더 흔했다. 한동안 주로 기녀들이 그 일을 맡았다가, 차차 가객(歌客) 또는 가자(歌者)라고 하는 기능인이 큰 몫을 하게 되었다. 전문적인 가객은 언제부터 있었던가 알기 어려우나, 18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뚜렷한 모습을 보이고 대단한 활동을 벌였다. 출신 신분은 대체로 중인보다 한 등급 낮은 서리(胥吏) 경아전(京衙前)의 하나로, 상급서리인 녹사(錄事)와 함께 각 관청의 문서처리·기록·연락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다
참고 자료
김용찬(1999), 『18세기의 시조문학과 예술사적 위상』, 月印
조동일(1984),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조순자(2006), 『가집에 담아낸 노래와 사람들』, 보고사
참고논문
이태희(1998), “김수장 시조 연구”, 대진대 교육대학원
한나영(2001), “90년대 후반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사회문화적 의미와 소비자 성향에 대한 연구”, 서강대 언론 대학원
김준희(2006), “김천택과 김수장의 작품세계 비교 연구”, 조선대 교육대학원
김현주(2002), “조선후기 시조 문학연구: 김천택, 김수장 작품 비교분석을 중심으로”, 서울 시립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