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 유럽 열강 및 관련국 태도
- 최초 등록일
- 2009.03.04
- 최종 저작일
- 2008.10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 유럽 열강 및 관련국 태도
목차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 유럽 열강 및 관련국 태도
1. 독일
2. 영국
3. 프랑스
4. 러시아
5. 이탈리아
6. 오스트리아
7. 중립국들의 참전
가. 터키
나. 일본
다. 중국
라. 이탈리아
마.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스
바. 미국
* 제 1차 세계대전 책임 논쟁의 개요
본문내용
1. 독일
o 독일정부는 영국이 중립을 지킬 전망이 없어지자 당황하였고 더욱이 민간 정치인(배드만 홀베크 재상 등)과 군부 사이에는 상당한 혼선이 있었다.
- 7.30 새벽 홀베트 재상은 빈주재 대사에게 오스트리아가 평화를 모색토록 설득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오스트리아 외무성에 독일의 충고를 무시하고 경솔히 행동하지 말고 러시아와 직접 교섭할 것을 부탁
- 그러나 독일정부는 7.30 아침 참모총장 몰트케가 작성한 대 러시아 최후 통첩안을 통과시키고 그날 저녁 11시 20분 훈령 200호를 빈 주재 대사에게 보내 평화를 모색토록 지시
- 동일 23시 20분에는 외무차관이 빈 공사관에 200호의 집행을 당분간 보류토록 지시
- 몰트케는 7.30 오스트리아 참모총장 콜라드에게 총동원령을 발동하도록 재촉
o 베를린의 혼선에 빈은 짜증을 내면서 “베를린에서는 누가 통치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할 정도였다.
o 독일군부는 슐리펜계획에 입각해 전투하려면 시간이 없다고 조급해하엿고 민간 정치인들은 영국의 중립이 보장되지 않자 주저하였다.
o 카이저의 벨그라드에서 정지 구상은 슐리펜 계획돠 어긋나는 제안이었으며 슐리펜 계획은 전면전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부분적인 동원은 단지 혼란만 야기시킨다는 군부의 주장에 따라 취소되고 7월31일 드디어 총동원령이 발동되엇다.
o 독일정부는 7월 31일 러시아 정부에게 군사준비 종식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내고 12시간 이내에 회답을 요구하는 한편 프랑스 정부에게는 독일, 러시아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 프랑스의 입장에 관해 문의(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8월 1일 프랑스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겠노라고 회답하고 군대 동원에 들어 갔음)
o 독일도 군대 동원령을 내리고 러시아로부터 회답이 없음을 이유로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o 독일은 룩셈부르크 침공을 개시하고 벨기에에게 독일군의 벨기에 영토 통과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o 독일은 8월 3일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하고 벨기에 침공을 시작. 베드만-홀베크 재상은 의회 연설을 통해 “필요는 법을 알지 못한다”로 말해 벨기에 중립을 보장해야 할 국제법의 위반을 공언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