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군과 싸운 일본인, 항왜
- 최초 등록일
- 2009.03.14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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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공수업 중에 작성한 논문입니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작성하였습니다.
A+ 받은 자료입니다.
목차
Ⅰ.들어가며
Ⅱ.본문
1. 사야가(沙也可) 김충선(金忠善)
2. 항왜(降倭)의 투항
3. 항왜(降倭)의 활용
Ⅲ.맺으며
참고자료 및 문헌
본문내용
Ⅰ.들어가며
조선 사회를 통째로 뒤흔들었던 임진왜란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일어난 것일까? 하는 물음에는 아직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당시 조선은 붕당간의 대립이 극에 달하였고 이는 일본에 파견 되었던 통신사의 보고에 잘 나타나 있다. 서인이었던 황윤길은 왜군이 곧 침구할 것이라 보고 했지만 동인이었던 김성일은 그럴 리 없다고 보고 했던 것이다. 마침 동인이 정권을 잡고 있던 터라 김성일의 주장이 받아 들여 졌고 왜군의 노골적인 침략 징후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왜군의 침략에 대해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유능한 영재였던 김성일이 당시 일본의 상황을 간파하지 못 했을 리 없기에 그의 망국적 책임은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비록 그의 본의가 민심의 동요를 막는 것에 있었다는 변호가 있지만 서인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컸다는 사실에서 당쟁에서 말미암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선조는 이러한 당쟁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용 하였다. 이러한 조선 정부의 분열은 일본 침략자의 야망을 자극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임진왜란은 무엇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적인 욕망이 가장 큰 원인 이었다는 것이다. 히데요시는 일본의 전국 통일이 끝나가는 시점부터 명과 인도를 정복하겠다는 자신의 야망을 드러냈고 1591년 필리핀 영주에게 보낸 서신에서는 자신을 군주로 떠받들고 조공하지 않으면 영주와 신하 모두들 도살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이러한 도요토미의 야망이 왜란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설은 일본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참고 자료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http://sillok.history.go.kr
《독립운동사문화컨텐츠 개발연구소》 http://cafe.daum.net/terroristlibera
한문종, 《조선전기향화 ․ 수직왜인연구》, 국학자료원, 2005
송영만, 《역사스페셜6》, 효형출판, 2003
이장희, 《임진왜란사 연구》, 아세아문화사, 2007
장곡천, 《귀화한 침략병:임진왜란의 숨은 이야기》, 현대문학,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