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로의 정치사상
- 최초 등록일
- 2009.04.09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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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승로의 정치사상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생애
2.사상적 특징
3. 군주관
4. 권력관
5. 사회관
Ⅲ.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최승로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삼게 된 것은 아주 조그만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성종에 때에 이르러 정5품 문하시랑을 역임하고 유학에 조예가 있던 최승로는 광종 때 실시되었던 노비안검법을 폐지하고 그에 역행하는 노비환천법에 동의하였다. 그의 업적은 성종 때에 유교사상에 입각하여 중앙 집권적 관료정치를 지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당시 아직 건재했던 호족들의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노비환천법보다는 노비안검법이 그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되었다. 그리하여 종전의 수박 겉핥기로 알기만 했던 최승로라는 인물과 그의 정치사상에 대해 이번 기회를 통해 제대로 알아보고자 주제로 선정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그의 생애에서부터 그의 사상을 군주관, 권력관, 사회관으로 분류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론
1.생애
아버지는 신라 6두품인 최은함(殷含)이다. 신라 말 경주에서 태어나 935년(태조 18)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할 때 아버지를 따라 고려에 왔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글을 잘 지었다. 12세 때 태조에게 불려가 〈논어〉를 읽었는데, 태조가 매우 가상히 여겨 염분(鹽盆)을 하사하고 원봉성(元鳳省)의 학생이 되게 했으며, 안마(鞍馬)와 예식(例食) 20석을 하사했다. 이후 주로 문장과 학문 계통의 관직에 종사했다. 광종대에는 중용되지 못했으나 경종대를 거쳐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982년(성종 1) 정광 행선관어사 상주국(正匡行選官御事上柱國)이 되었다. 그해 6월 왕이 5품 이상 경관(京官)에게 봉사(封事)를 올려 시정(時政)의 득실(得失)을 논하게 하자 28조의 시무(時務)를 올렸다. 이듬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었으며, 988년에는 문하수시중(門下守侍中)이 되고, 청하후(淸河侯)로 봉해져 식읍(食邑) 700호를 받았다. 여러 차례 벼슬을 그만두기를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