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은 이 두 반란에 크게 동요하였지만 결국 마사카도의 난은 관군이 도착하기 전 같은 간토 무사인 다이라노 사다모리와 후지와라노 히데사토(藤原秀鄕)와의 전투에서 어이없이 죽어버렸다. ... 율령제도 또한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 무쓰의 장관으로 내려가 있던 미나모토노 요시이에(源義家)는 도호쿠(東北) 지방 오우에서 군림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이 난에 개입하여 1087년 기요하라씨를 멸망시켰다.
수입한 화기인 철포 즉 조총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일본 최초의 다이묘였다.셋째, 노부나가는 예리한 전략가였고 전술가였다. ... 히데요시의 통치{ 박찬수, pp. 184-185.히데요시는 1587년 12월 일본국 전역에 대해 천황의 권위를 배경으로 간토·오우 총무사령 이라 불리는 평화령을 공포하여 국군을 다시 ... 부장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카마쓰성을 도우러 온 서부의 패자 모리 씨와 대치하고 있었다.
후지와라씨가 수도에서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지방에서는 무사(武士)들이 세력을 넓혀 갔다. ... 상황이 院政(원정)을 시작된다이 무렵 승병의 폭동이 일어남1156 4)호겐의 난이 일어남1159 5)평치의 란이 일어남1167 다이라노키요모리가 태정관의 최고의 장관이 된다1185 ... 그리하여 다이라씨는 많은 쇼우엔(莊園)을 소유하게 되었고 "다이라씨가 아니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강한 세력을 떨쳤다.다이라씨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고시라카와 호우오우(後白河法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