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밖에도 현실사회에서 재난 외침이 있을 경우에 이를 불력(佛力)에 의거하여 극복하려는 염원 하에 갖가지 불교행사가 있었다. ... 특히 고분군에 있는 벽화는 웅장하면서도 야성적인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무용총벽화에서 당시고구려의 무용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 이 도시 7천명 주민 중 1천 이상이 학살당했고, 도시 전체를 불바다로 되었던 것이파시즘 독재와 공포 앞에 의연히 맞선 분노의 외침이며 혁명이었고 피카소의 상징이었다. ... 프랑수아즈만이 간신히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지만 그녀 역시 그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첫번째 연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는 피카소와 20세의 동갑내기였는데 그녀는 야성형 여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