圃隱 鄭夢周의 改革과 三峯 鄭道傳의 革命Ⅳ. 廢假立眞, 그리고 鄭夢周Ⅴ. 結言Ⅰ. ... 廢假立眞, 그리고 鄭夢周정몽주는 ‘불사이군’의 태도로 고려를 택한 의리의 사나이로 남아있다. ... 폐위되고 최영(崔瑩, 1316~1388)이 죽자 신진사대부 대부분이 정치 일선에 등장했는데, 그 중에서도 정몽주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정몽주는 우왕 폐위 이후, ‘폐가입진(廢假立眞
이성계는 연루자들을 제거하고 폐가입진(廢假立眞)을 명분으로 창왕도폐하고 정창군(定昌君) 요(瑤)를 세워 공양왕(恭讓王: 1389~1392)이 즉위했다. ... 이러한 노력으로이색(李穡)을 중심으로 정몽주(鄭夢周), 이존오(李存吾), 임박(林樸), 박상충(朴尙衷), 이숭인(李崇仁), 정도전(鄭道傳), 박의중(朴宜中), 윤소종(尹紹宗), 권근 ... 그리고 유교적인 입장에서권문세족과 밀접한 불교를 크게 비판하였다.
정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성계와 정도전 등은 廢假立眞을 내세워 우왕의 아들인 창왕마저 辛氏라고 하여 강화도로 축출하고 神宗의 7대손인 定昌君 瑤(恭讓王)를 옹립하였다. ... )에 처형됨으로써 개혁은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신돈이 몰락하자 정국은 다시 崔瑩이나 慶千興 등과 같은 기존의 권문세족을 중심으로 하여 개편되었고 동시에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鄭夢周 ... 그리고 이제까지 주장되면서도 실천에 옮겨지지 못했던 사전과 농장의 개혁을 단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