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인 박성준의 두번째 시집 『잘 모르는 사이』. 2015년 제16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작인 「뜨거운 곡선」을 비롯하여 총 62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묶였다. 첫 시집 『몰아 쓴 일기』(2012)가 내밀한 고통을 ‘누이’라는 거대한 아픔의 상징으로 터뜨려낸, 손 대면 툭 갈라져버릴 듯한 뜨겁고도 치열한 통증의...
박성준은 이전 시집『몰아 쓴 일기』에서‘귀신’, ‘신병’, ‘누이’ 등의 무속적 소재와 의고적인 문체, 광기 어린 언어 표현을 통해 시적 화자가 겪어야만 하는 고통을 고스란히 시집에 담았다. 하지만 이번 시집 『잘 모르는 사이』에서는 광기어린 언어가 서려있던 자리에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언어가 대신 자리 잡았고 광기 어린 표현을 매개해주던 누이라는 존재도 사라져 버렸다. 이 시집의 서시라고 볼 수 있는「벌거숭이 기계의 사랑」에서‘벌거숭이 기계’라는 표현은 누이가 사라진 시적 화자의 처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로 보인다. 시적 화자는 누이 없이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부끄러운 벌거숭이의 모습을 하고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시적 화자의 자의식에서 누이가 사라진 이유는 이전 시집인『몰아 쓴 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몰아 쓴 일기』의 시적 화자는 초자연적인 병을 앓고 있는 누이라는 영매를 통해 말할 수도, 직접 겪을 수도 없는 저승의 세계를 이승의 공간으로 끌어와 말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