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리하여 20년 만에 아이의 뼈가 세상에 실체를 드러낸 순간 노파의 선택을 그린 표제작 「아이의 뼈」, 텔레마케터와 ‘진상 고객’과의 일화를 담은 씁쓸한 뒷맛의 블랙코미디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비롯하여 사회적 메시지가 묵직한 9편의 단편을 담았다.
송시우 작가는 2014년 첫 장편...
나는 범죄피해자학 강연회에서 노파를 다시 만났다. 노파는 강의 중간에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법 큰 규모의 행사였다. 변호가 자격밖에 없는 내가 그 강연회의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몇 년 전부터 피해자 학회에 이름을 올려 두었기 때문이었다.
쪼그라든 몸매에 뒤뚱거렸지만 머리카락을 매끈하게 넘겨 쪽진 백발을 뒤로 올린 노파를 나는 한 눈에 알아보았다. 노파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 가늘어진 몸으로 한 손에 든 큼지막한 비닐가방을 들고 있었다.
강의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범죄 피해자들의 수기발표가 있었다. 이어서 고통에 대한 기억 극복과 치유를 위한 타임캡슐행사가 진행됐다. 참여자들은 행사를 위해 제각각 크고 작은 짐을 들고 주섬주섬 일어섰다. 노파도 비닐가방을 들고 강연장을 나가는 사람들 뒤에 붙어 섰다.
뒷마당에는 타임캡슐행사를 위해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그곳에 범죄피해자의 영정이나 가슴 아픈 유품들, 건강하고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묻는 것이다. 5년 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개봉되니 그 때를 위해 열쇠를 잘 간직하라고 진행요원이 말했다.
빈 강연장에 남아서 창밖으로 행사장을 쳐다보던 나는 “여기 계셨네요.” 하는 말에 뒤를 돌아보자 노파가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나도 따라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우리는 건물 1층 로비에 있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마주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김남호가 죽었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노파는 대답 없이 찻잔을 들어올렸다.
“지난여름 머리가 없는 시체로 발견 되었습니다 옷가지 속에 제 연락처를 적은 쪽지가 나와 경찰이 연락해서 알았습니다.”
그래도 노파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후 나는 시체발견 사실이 토막기사로 신문지상에 등장한 후에 틈틈이 후속기사를 찾아봤지만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지문조회로 알아낸 결과 머리 없는 몸의 주인은 살인죄로 20년 복역 후 작년에 출소한 쉰 네 살의 전과자 김남호였다.
당시 김남호의 행색은 노숙자와 가까워 행적조사가 어렵다고 경찰이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