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원하는 대로 마구 돈을 쏟아내는 마술주머니에 탐이 나서 자신의 그림자를 악마에게 넘긴 슐레밀은 그 마술주머니가 가져다 주는 부와 명예에 도취하지만, 이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다니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는 그의 모습을 보고서 손가락질하거나 그를 기피한다. 그 어떤 사회적 집단에 소속될 수...
김영하의 단편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을 모티브로 한 동명의 소설이다.
두 소설은 시기만 다를 뿐 모두 인간 소외 문제를 다뤘다. 샤미소 소설에서 슐레만은 마지막에 그림자를 다시 팔기를 거부한다.
비록 그림자를 빼앗겼지만 영혼까지 빼앗기지 않고 행복을 찾아 자유롭게 떠난다.
김영하 소설에서도 주인공도 마지막에 그림자를 거부한다. 샤미소 소설에서처럼 그림자 이상의 무엇, 즉 영혼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비추어보면 소외 그 자체로 머문 것으로 본다. 주인공은 바오로와 미경의 관계에서 누군가의 영혼에 어둠을 드리울 그 무언가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나오는 “그리고 운다”에서 그림자를 거부한다. 이는 다시 익숙해진 소외로 들어간 것으로 짐작된다. 이불 속에 스스로 들어가 우는 과정에서 독특한 점은 타자에 의한 소외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소외라는 점이다.
결국 울어버린 나는 타인과 관계를 쉽게 하지 못하는 외톨이인 현대인의 자화상을 대변한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다 읽고 처음에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이해가 잘 안가서 의아했다. 다시 곱씹어 보면서 두, 세 번 정도 읽으니 희미하게나마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은 창공을 나는 새에게도 그림자는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작고 가벼운 새에게 그림자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있냐고 묻는다. 이 질문에 ‘나’는 자신이 제 그림자에 놀라던 소심한 어린아이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설가가 되어서 혼자 신문을 보고, 밥을 차려먹고,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 그림자와 혼자 살아가는 모습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미경과의 전화를 끊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그림자가 무엇인지 흐릿하게 느껴졌다.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 속에는 흥미로운 점들이 많이 나타난다. 행운의 자루나 마법 장화와 같은 물건에서부터 등장인물, 그림자를 팔 수 있다는 사건에서까지 말이다. 소설을 읽으며 이러한 흥미로운 것들 가운데 나는 그림자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슐레밀이 자신의 그림자를 팔게 된 이유는 그 또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힘든 항해를 마친 그는 존 씨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 찾아왔고 돈이 필요한 슐레밀을 보고 회색 사나이는 의도적으로 접근해 그림자를 팔았던 것이다.
슐레밀이 그림자를 팔면서 얻게 된 것은 행운의 자루, 즉 돈이고 잃게 된 것은 사람 간의 관계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