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시집에서 시인은 가시적인 세계의 뒤 혹은 밑에서 음흉하게 또아리고 틀고 있는 현대 사회의 치부를 투시하면서 그 안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비루함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싱싱하다. 그것은 그가 참담한 삶의 진상을 똑바로 보면서 스스로가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역설을...
최승호는 일상적 도시 경험을 낱낱의 세목에 주목하여 세밀하게 묘사하는 시인이다. <썩는 여자> 또한 그러한 도시적인 삶을 표현해낸 것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에게 ‘그녀’가 살아가는 도시는 ‘시체’, ‘악취’, ‘곰팡이’등의 단어로부터 미루어 볼 수 있듯이, 비단 긍정적인 사회로 인식되지 않는다. 오히려 각박하고 우울한 사회를 표상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지하에서 살아가는 여자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 불행과 암흑으로 점철된 그녀의 삶의 모습은 사실적인 묘사로 하여금 착실하게 표현되고 인식된다.
처음, ‘그녀’는 지하철을 타고 지하상가의 많은 물건들을 방에다 가득 채운다. 지하철을 타고서 지하상가에 들려 많은 물건들을 구입해 집에 구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절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의 허영심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허영심은 아마 개인의 욕구 불충만 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피상적인 사회에서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면서 감각한 허무감과 무상감을 보충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는 솔직히 내 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바로 “공장지대”라는 시 한편을 통해서였다. 아주 기괴했고 읽고 나서는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시집에 실려 있는 시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일단 “고슴도치의 마을”에서도 “공장지대”에서 느껴지는 그런 기괴함, 그로테스크함이 엿보인다. “오징어3”을 보면 사랑한다면서도 서로 목을 조르는, 어긋난 두 감정을 교차시키는 것과 “붕붕거리는 풍경”에서의 “충돌하며 인간의 피를 먹는 기계”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