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개들의 예감>>에서 시인은 언어를 물질로 인식하면서, 짧으면서도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던진다. 그 이미지들은 현미경을 통해 보는 어떤 대상들처럼 비사실적인 전혀 다른 세계의 모습을 띠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상상력이 극단적으로 가면, 언어에 의한 시쓰기 대신 실재하는...
작품은 오종현을 바라보는 알 수 없는 남자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여기서 오종현을 바라보는 남자는 그가 지닌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비난하는 시선을 의미한다.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로 서있는 남자의 모습은 사뭇 진지해보이기 까지 한다. 이는 오종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비난적 시선을 한층 심화시키는 역할을 할뿐더러 반대로 세탁소 안에 위치한 오종현에게 직접적인 자극을 줄 수 없는 남자의 위치를 부각시키는 역할 또한 해내고 있다.
작품 속 오종현은 우리나라 40대의 모든 중년 남성을 대변하고 있다. 아내와 이혼을 한 뒤 재산을 반으로 나누고, 개인 사업이라는 요량으로 세탁소를 차린 그는 지극히 일상적인 톱니바퀴를 지니고 있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가 가진 안정 지향적 성격이다. 그에게 있어 세탁소가 갖는 의미는 퇴직 후 차린 개인 사업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선다. 세탁소는 그의 일상이라는 톱니바퀴가 어긋나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세탁소를 차림으로써 그는 이전에 보내고 있던 일상을 최대한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인생을 밝게만 바라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인생은 밤이다. 작가는 뻔하게 굴러가는 톱니바퀴 인생을 무조건적으로 지향하는 그를 비난함과 동시에 그와 같은 일종의 사회 부속품화 되어가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으며 그러한 인생 자체를 밤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손님이 몰려들면서 어둠 속에 가려진 남자를 힐끔거릴 틈도 없이 바빠졌다. 세탁물을 받고 내역을 입력하여 인수증을 주고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줬다. 천장에 걸린 봉에서 커버를 씌운 세탁물을 찾아 개수와 품목을 확인하고 건네주었다. 비닐 커버를 쓰고 천장에 매달린 세탁물을 뒤적이고 있노라면 자신의 인생은 고작 세탁해야 할 옷과 세탁한 옷 사이를 그저 무한히 왕복하다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밤이 지나간다』, 115쪽
오종현이 사회 부속품화 된 자신을 비난하는 남자의 시선에 있어 처음 느끼는 감정은 불안이다. 허나 세탁소 안에서의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안정을 되찾고 다시금 자신의 일에 집중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