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제13권에서는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이자 현대 소설론인 『커튼』을 소개한다. 오늘날 현대 소설이 지닌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의의를 쿤데라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과 풍부한 지식,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풀어냈다. 자신의 작품은 물론, 카프카, 곰브로비치, 플로베르...
1. 프랑스의 동유럽인 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는 1929년 체코의 브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이자 유명 피아니스트였다. 밀란 쿤데라는 야나체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의 예술아카데미 AMU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 이후 소련 침공과 ‘프라하의 봄’ 무렵의 숙청으로 인해 그는 역경을 맞았다. 모든 공직에서 해직되었으며 그의 책들은 도서관에서 사라졌고 그 자신은 글을 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금지되었다. 고국 체코에서는 『농담』과 『우스운 사랑들』 두 권만 발표되었다.
하지만 쿤데라는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하고 『농담(La Plaisanterie)』이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유명작가가 되었다.
< 중 략 >
3. 쿤데라의 세계문학론-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한의 다양성을
쿤데라의 소설의 존재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들 중에 하나는 ‘2부 세계문학’에 실린 장들일 것이다. 11개의 짧은 글들로 구성된 이 부분에서 요즘 대중 독서계나 출판계, 학계에서 중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세계문학의 논의를 펼치고 있다.
세계문학이란 개념을 처음 표명한 사람은 19세기의 괴테다. “민족문학은 오늘날 더 이상 커다란 의미가 없다. 우리는 세계문학(Die Weltliteratur)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임무다.”(54) 근대사회로 이행 할수록 국가 간 교류가 잦아지고 경계가 흐려지면서 각 나라의 민족문학의 경계를 넘어 세계문학의 길을 도모하여 문화 교류와 연대를 도모하자는 것이 괴테의 세계문학론의 요체할 할 것이다.
쿤데라에게 문학이란 세계문학이며 진정 위대한 문학이란 세계문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문학론이다. 쿤데라는 세계문학 개념을 ‘예술작품의 위치를 정할 수 있는 두 가지 기본적인 콘텍스트’의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각 나라의 역사를 나타내는 ‘작은 콘텍스트’와 그 예술의 초국가적인 역사를 이르는 ‘커다란 콘텍스트’가 그것이다. (중략)
민족주의자건 코스모폴리탄이건, 정착해서 살건 떠돌며 살건, 유럽인은 조국과의 관계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 유럽에서 민족주의의 틀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더 복잡하고 심각하며, 어쨌든 다르다. 여기에 또 다른 특성이 추가된다. 유럽에는 커다란 국가들 옆에, 그 가운데 몇 나라는 최근 두 세기동안 정치적 독립을 획득한 작은 국가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런 나라들의 존재는 나로 하여금 문화적 다양성이 유럽의 위대한 가치임을 깨닫게 했다. 러시아가 내 작은 조국을 그들 마음대로 주물럭거릴 때, 나는 유럽에 대한 나의 이상을 다음과 같이 표명한 바 있다.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한의 다양성을. 러시아인들은 내 조국을 더 이상 지배하지 않지만 이 이상은 더욱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
유럽의 모든 국가는 공동운명을 갖고 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 낸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예술의 여사는 서로 다른 국가들이 번갈아 가며 증인이 되는 릴레이 경주처럼 나타난다. 다성 음악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이탈리아에서 발전되고 네덜란드에서 놀랄 만큼 복잡한 구성을 보이다가 독일에서 바흐의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18세기 영국 소설이 비약한 이후에 프랑스 소설의 시대가, 그 후에는 러시아 소설, 그 후에는 북유럽 소설의 시대가 왔다. 유럽 예술의 여사가 보여주는 역동성과 긴 호흡은, 그 다양한 경험이 고갈되지 않는 영감의 원천을 이루는 국가들의 존재 없이는 생각하기 힘들다.
나는 아이슬란드를 떠올린다. 13세기와 14세기에 수천 쪽에 이르는 작품이 여기에서 태어났으니 그것이 바로 전설과 영웅담을 담은 ‘사가’(saga)이다. 프랑스인이나 영국인도 이 시기에는 아직 모국어로 쓰인 그러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점을 끝까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유럽 산문의 첫 번째 위대한 도약은 오늘날에도 인구가 불과 3만명을 넘지 못하는 가장 작은 나라에서 창조되었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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