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와 사진은 별개의 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시 따로 사진 따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이슬 한 방울이 무연하게 꽃봉오리에 떨어졌습니다.
이슬이 앉은 꽃봉오리와 꽃봉오리를 만난 이슬은
그 이전의 이슬과 꽃봉오리일까요?
이슬 한 방울로 하여 꽃이 피어납니다.
꽃을 만나 이슬은 향기로운 보석이 됩니다.
거기에 햇살이 다가와 비로소 활짝 한 우주가 완성되는군요.
사진과 시, 이 우연한 조합에서
꽃과 이슬의 화학반응을 기대해봅니다.
기적을 완성하기에는 햇살과 같은 맑은 눈빛이 필요하겠지요.
그 눈빛 맑은 사람이 바로 당신이군요.
덕분에 제 누추한 삶을 시로 추스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쩌다 열 번째 시집이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이 일에 더 야무지게 어리석어볼 요량입니다.
여수 오동도에 놀러 간 적이 있다. 하늘이 뾰족뾰족하게 보이는 빽빽한 나무들 사이를 지나며 오르다가 바다를 보기위해 아래로 내려갔는데 그 곳에서 복효근의 시 ‘섬’을 만났다. 그 시의 내용이 감동적이었고 취향에 맞아서 이 시집을 읽게 되었다. 또 시집의 제목이 잔잔하고 얇은 어둠이 밀려오는 해질녘의 느낌이 있어서 보게 되었다.
<중 략>
‘물앵두 익을 무렵’이라는 시는 마음의 노트에 필사를 했다. 사진사가 좋은 풍경사진을 찍어 보관해두듯이. 첫 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새들이 남겨놓은 물앵두/ 몇 알을 따면서/ 그것을 가로챈다거나 훔친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리’라고 말이다. 나도 벚나무밑을 지나면서 버찌를 달디달게 따 먹은 적이 있었는데 쬐그만 새와 같이 먹는다거나 새의 먹이를 훔친 것 같기도 해서 미안한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앵두를 먼 우주의 보석별로 비유하거나 끝연에서 ‘물앵두와 새와 별과 우주와 한 인연으로 엮인 것이/ 못 견디도록 신기로웁고 흥감하여’라는 시행들은 점점 외연을 확대해가는 시적 확장을 체험하기도 한다. 또 ‘내 심장에서 막 꺼낸 숯불처럼/ 뜨거운 낱말인 듯’이라는 말은 은유의 이미지가 퍽 놀라울 뿐이다.
이 그림책같은 시집은 총 4부로 되어 있다. 그리고 시마다 시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듯한 사진이 나란히 실려있다.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난 개인적으로 서정시를 좋아한다. 특히 자연에서 살면서 쓴 자연시를 좋아한다. 시속에서 마음으로 나무와 새와 풀과 꽃과 그 밖의 자연의 생명을 만난다. 시에 몰입하며 필사하기도 한다. 그렇게 복효근의 시는 나를 읽는 내내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그의 시속으로 들어가보자.
<중 략>
이 아름다운 시집을 다 읽고 나니 저녁이 찾아든다. 아주 고요한 저녁이 조용히 말이 없이 지상으로 납시고 계신다. 긴 그림자를 거느리고 말이다. 난 언젠가 다시 이 시집을 들춰볼 것이다. 그리움이 깊어지면 그 그리움의 속도로 다시 이 시집을 찾게 될 것이다.
당분간 복효근의 다른 시집들을 만날 것 같다. 그의 서정적인 매력의 숲이 너무 그윽하다. 그의 사색과 정서로 시적 기술로 시를 영글게 하는 시의 열매를 난 그의 파랑새처럼 쪼아 먹을 것이다. 이 무더운 칠월의 여름을 지나가면서 매우 아름다운 한 시인의 시 정원으로 날아갈 것이다. 그러면 시의 향기와 시의 즙으로 능히 이 계절을 만끽할 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