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13년 9월 하순 무렵. 옛날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대상들이 혜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동굴에서 사이좋게 지내며 먹던 쑥과 마늘이었다. 쑥과 마늘의 정체가 풀리자 단군신화의 전체 내용들은 하나하나 기지개를 펴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축제가 끝나고 한 곳에 마구 버려진 풍선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듯이. 이 책은 이렇게 해서 완성될 수 있었다.
주몽신화를 해석한 책 속에서 신화는 고대인들이 곡식의 파종시기와 수확시기 등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 활용했던 별 혹은 별자리들을 담아놓는 바구니라고 한 적이 있다. 이 책에서도 이러한 생각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다.
단군신화를 해석하는 것은 주몽신화보다 쉬울 수 있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군신화에 담겨 있는 신화적 상징성은 쉽게 빗장을 풀기 어렵다.
가. 신화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신화를 이야기하면 그리스나 로마 신화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신화는 흥미진진하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그 서사가 대단히 웅장하고 화려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서양의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신화는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나 출발점으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다. 고대에 문자가 없거나 기록이 원활치 못했을 때는 주로 구전에 의존했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자라는 세대들에게는 하나의 역사이자 서로를 끈끈하게 묶어주는 끈이었다.
당연히 우리에게도 단군신화를 비롯한 많은 신화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신화는 어쩐 일인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의 이야기로 평가절하 되어 외면 받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이러한 평가절하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부정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 참에 전관수의 ‘단군신화는 천문학이다’라는 책은 신선할 뿐만 아니라 단군신화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임이 분명하다. 이로 인해 단군신화가 본격적인 우리의 관심 대상에 오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군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화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연관해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신화의 존재 이유이며 단군신화는 우리 역사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범과 곰, 마늘과 쑥은 그저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뜻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