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요절한 천재보다는 긴 생애를 통해 부단한 열정으로 평생 ‘나의 길’을 완주한 사람을 진정한 현대의 영웅이라고 한다면 구순의 생애를 통해 교직 생활과 주후쿠오카 대한민국총영사관 영사, 후쿠오카 한국종합교육원 초대 원장 등의 직책에 골몰하면서도 아홉 권의 시조집과 한권의 시조선집으로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궁구하며 살아온 시인이야말로 그러한 칭송을 들을 만하지 않은가. 다시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평생 소나기와 태풍을 이겨 쌓아온 물과 바람은 이제 깊이를 모르는 바다의 고요와 가을 저녁 산들바람의 평안을 얻었는가. 세상의 화려한 꾸밈 속에 묻혀버린 참된 말이 아이들의 말과 같은 천진으로 단시조의 고아한 정형 위에 얹혔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동심의 말이 아닌, 경계를 무화한 성숙할 대로 성숙한 노년의 발화인 것이다.
피로로 지친 몸을 이끌며 다이빙하듯이 내 침대에 풀썩 뛰어들었다. 지금은 잠옷을 입고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았지만, 아직 낚싯대를 쥐고 출렁이는 바다 위에 서 있는 듯한 몽롱한 느낌이었다. 몇 시간 동안 낚싯대를 잡아서 알이 잔뜩 배긴 팔을 주무르다 보니 손목에 새까맣게 탄 자국이 보였다.
‘뭐야, 손이 탔었네. 하긴 햇빛이 따가웠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
동그랗게 띠 모양으로 탄 손목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절로 지어지며 나는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들아, 일어나라. 낚시 가야지.”
아직 캄캄한 새벽 내 방의 커튼을 확 젖히시며 아빠는 나를 깨우셨다. 오늘은 나와 동생이 첫 낚시를 하러 가는 날이었다. 나는 반쯤 잠긴 눈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토시도 끼고 아빠 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