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황금 지붕이 덮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이 세상의 중심이다!
1994년「현대문학」에 장편 〈난쟁이 나라의 국경일〉이 당선되어 등단한 오수연 소설집.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분쟁지역의 참담한 상황과 그곳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에 천착해온 작가의 두 번째 작품집으로, 대부분의 소설은 지상에서 가장 참혹한 상태에 있는 지역들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소설의 대부분은 전쟁과 침략으로 요동치는 시공간에서 분열하는 자아를 그리고 있다. 〈문〉에서 화자 일행은 국경지대의 검문소에서 입국 비자를 받지 못해 들어가지 못하고 몇 시간이고 기다린다. 〈길〉은 독재자의 편에도, 점령군의 편에도 설 수 없는 이라크 인들의 막막한 처지와 쿠르드 족의 비참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드러낸다. 표제작인 〈황금 지붕〉에서 '황금 지붕'은 순교자들의 무덤과도 같은 곳을 의미한다. 그곳은 실존하며, '모든 길은 그곳으로 향하지만 어떤 길도 거기 다다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작가는 어느 한 장소나 시점에 국한되지 않는 사건의 보편성,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이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폭발적인 혼돈 상태 등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또한, 현장 체험을 내면으로 심화하여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확장하면서 대안적인 사유까지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나간다.
황금지붕』에서 묘사되는 공간은 대개 우울한 죽음의 공간, 무기력한 절망의 공간과 같이 불쾌하리만큼 날 것의, ‘부정’ 그 자체의 공간이다. 작가는 자신의 현장 체험뿐만 아니라 그 경험과 맞닿아 있는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확장시켜서, 수록된 단편 사이의 공간에 대한 구획뿐만 아니라 독자와 이 소설 사이의 구획마저 완전히 제거했다. 소설을 읽으며 이 공간과 내가 너무 멀게 느껴질 때도, 혹은 내가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작가의 설계를 통해 나는 지구 정반대의 이질적인 세계관에 대해 혼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매끄럽게 융합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