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의 창건과 화엄사상
- 최초 등록일
- 2010.03.11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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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화엄사의 창건과 화엄사상에 관한 레포트 입니다.
신라에서의 화엄사상의 수용과정과 의상과 원효의 활약 및 사상에 대해서 소개하고 화엄사의 창건과 역사, 그 의미에 대해서 작성한 글입니다.
A+를 받은 레포트입니다.
목차
一. 머리말
二. 화엄사상의 수용
1. 화엄사상의 도입
2. 원효의 교학과 화엄사상
三. 의상계 화엄종의 성립
1. 의상의 생애와 화엄사상
2. 의상계의 사찰과 그 문도
四. 화엄사의 창건과 역사
1. 화엄사의 창건
2. 화엄사의 역사
五. 신라 화엄사상의 사회적 성격
1. 신라 화엄사상의 실천신앙과 효사상
2. 신라 화엄의 원융사상과 그 사회적 성격
六. 맺음말
본문내용
1. 화엄사상의 도입
1) 화엄사상
화엄사상은 화엄경(華嚴經)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데, 그 어원은 마하비불략 발타건나 표하수다라로 이를 의역하여 대방광불화엄경이라 한다. <대광불>은 그 의지가 깊고 넓어 표현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우주가 크고 밝고 넓다는 진리를 표현하는 수식구이다. 그것은 또한 깨달음의 세계가 관대함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우주가 크고 밝고 넓다는 진리를 표현한 수식구이다. 그것은 또한 깨달음의 세계가 관대함을 표현한다. 화엄은 불타가 깨달은 경지인데, 아름답고 웅대한 도량에 수많은 꽃들이 존엄하게 장식되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전은 미묘하고 장엄한 세계관을 갖추고 있다.
인도의 용수가 화엄경을 저작했다는 설이 있다. 나집이 번역한 용수전에는 대룡보살의 인도로 용궁에 들어갔던 용수가 불경을 얻어 왔다고 기록하였으나, 화엄경을 가져왔다는 언급은 없다. 다만 법장의 『화엄전기』에 용수가 화엄경을 소장하였다고 기록하였다.그러나 용수 당시의 인도에는 대방광불화엄경이 없었다. 용수가 『대지도론』을 저술할 때에 방등경∙반야경∙법화경 등을 인용하였으나, 화엄경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용수는 10지경∙백천경∙입불사의해탈경등을 인용하였는데, 그 내용은 화엄경 속에 그대로 나와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용수 당시에 화엄경은 분명히 없었으며, 그것의 내용이 독립된 여러 경전으로 분산되어 있었다. 따라서 불교사상의 발전과정에서 볼 때 화엄경은 가장 우수하여 최후에 결집된 대승경전이지만, 그 내용은 용수당시에 유행하였다.
중국에 전해진 화엄경은 418년에서 421년 사이에 처음으로 번역되었다. 인도 가비라국의 승려인 불태발타라가 북위의 장안으로부터 지금의 남경으로 왔고, 도장사에서 60권으로 화엄경을 번역하였다. 처음 번역될 당시의 화엄경은 50권이었으나, 뒤에 교정을 첨가하여 60권이 되었다. 이 경전은 자장에 의해 신라에서 강론되었다. 이것을 “진본화엄경(晋本華嚴經)”이라 한다. 그 후 당나라 측천무후 때에 80권으로 번역된 화엄경을 “당본화엄경(唐本華嚴經)”이라 한다. 또한 800년에 번역된 40권의 화엄경을 “정원본화엄경(貞元本華嚴經)”이라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