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시대의 성만찬논쟁
- 최초 등록일
- 2013.03.14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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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논쟁 이전의 가톨릭 성만찬 _화체설
3. 루터의 성만찬론
4. 쯔빙글리의 성만찬론
5. 마르부르크 회담
6. 칼빈의 성만찬론
7. 결론
본문내용
서론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가장 잘 드러내며 찬양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성례전은 아마 성만찬 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당신의 살과 피를 제자들과 나누어 생명을 공유하게 하심을 기념하고 체험하는 것은 현대의 예배에서도 중요한 회복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논쟁 이전의 가톨릭 성만찬 _화체설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초대 사도 시대부터 시작된 성만찬의 본질은 로마 가톨릭 교회로 가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초대교회 성만찬은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가 공존하였지만 가톨릭 교회의 성만찬은 지나친 의식만이 강조된 성찬의 예배만이 집례되었고, 그리스도의 희생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성만찬은 중세기 사물의 외부적 우유성 (accident)과 내적 본질(substance)를 구별하는 스콜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 성찬의 재료인 떡과 포도주가 그 물질은 변화하지 않으나 사제의 축사를 통하여 그 본질이 역사적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하는 화체설(化體設, Transubstantiation)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찬이 반복될 때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또한 매번 반복되는 것이 되고, 성물의 변화는 육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영적인 의미로 인식이 강조되면서 미신적인 관념의 성례전으로 퇴색하여 그 본래적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배는 성례전 중심이었고, 사제 중심이었기에 그들은 축사한 성물을 높이 들어 회중이 바라보게 했다. 회중들은 성만찬을 집례하는 사제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그들의 참여는 부활절 예배 때에 떡만이 허락되었다. 중세 교회는 이렇게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을 교리화 하였고, 그 희생을 성만찬을 통해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희생제사를 사제가 대표하여 드리는 것으로 예배에 있어서의 말씀과 그리스도를 멀리하는 폐단을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교회의 말씀과 성만찬의 불균형을 회복하고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는 운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신들의 특유한 입장과 신학에 따라 재조명하여 성만찬을 정의하는 것을 중요한 신학적 과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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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