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문화사] 분식의 역사 - 분식의 시작(분식 혼식 장려운동), 밀(밀의 개념과 재배 역사, 밀의 대표적인 음식), 국수의 역사, 라면의 역사, 빵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4.06.23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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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분식의 시작 - 분식 혼식 장려운동
2. 밀
1) 밀의 개념과 재배 역사
2) 밀의 대표적인 음식
(1) 국수
(2) 유밀과
(3) 수제비
3. 국수의 역사
4. 라면의 역사
5. 빵의 역사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분식의 시작 - 분식 혼식 장려운동
1960년대 8․15해방은 "배고픔으로부터 해방"까지 가져다주지는 못 하였다. 해방 직후 최악의 극빈 상태에서 또다 발발한 6․25전쟁으로 국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고 인구까지 급격히 늘어났다. 서민들 생활은 고달팠고, 너나 할 것 없이 살기 힘들게 되었다.
1962년 8월에는 태풍 “노라” 와 함께 가뭄이 겹쳐 62년도에는 최악의 흉년을 기록한 한 해 였다. 이런 이유로, 쌀이 워낙 부족했기 때문에 보리밥을 먹어야 했다.
1963년 2월 미국의 원조밀가루(PL480)가 들어오면서 식량사정은 다소 전됐으나, 정부는 "분식장려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분식이 건강에 좋다"는 구호가 들렸지만, 사실은 쌀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점심시간마다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 쌀밥을 싸온 아이들은 혼내주던 때도 이 시기였다. 또한 쌀의 소비를 줄이는 절미 운동이 강력하게 추진되어 주요도시에 국수식당이 등장하고, 과자와 엿의 제조에 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절미운동에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었다.
<중 략>
분식장려에 힘입은 라면 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했으며 지금은 국민 한사람이 연간80여개를 먹고 있다. 1인당 40~50개를 먹는 라면 종주국 일본의 배이다. 연간 3~40%씩 급성장하고 있는 라면은 90년대 접어들어 절대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대체식품뿐만 아니라, 기호식품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떠안게 된다. 라면은 우리의 삶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바야흐로 '문화'의 단계로 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와 같은 방대한 시장이 형성되게된 요인으로는 당시 식량부족에서 온 '절대빈곤해소기여'라는 기업인들의 의지와 정부지원의 뒷바침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50년대에서 70년대로 이어지면서 급속한 경제발전에 힘입어 국빈소득향상, 이에 따른 레저생활 증가, 영양을 고려한 주식 및 간식용으로 수요가 계속 늘어난 것이 주 요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 자료
오카다 데쓰 저, 국수와 빵의 문화사, 뿌리와이파리 2006
한국외식정보 편집부 저, 한국외식연감, 한국외식정보 2013
김환표 저, 쌀밥 전쟁, 인물과사상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