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 최초 등록일
- 2016.11.06
- 최종 저작일
- 2016.11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목차
1. 만해 한용운의 생애
2. <님의 침묵>의 주요내용
3. 비평적 해설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만해 한용운의 생애
만해 한용운(1879~1944)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청주, 속명은 유천, 자는 정옥, 용운은 법명이며, 득도하였을 때의 계명은 봉완, 법호는 만해이다. 1944년 6월 29일 서울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시인으로서 한국근대사에 불후의 명작인 ‘님의 침묵’을 발간하였고, 승려로서 한국 근대 불교계에서 혁신적인 사회개혁 사상을 펼쳤으며, 독립운동가로서 3.1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로 참가하는 등 일제 강점기의 혁신적인 사상과 활동에 앞장 선 인물이다.
만해는 강화도 조약이 맺어진 3년 뒤에 태어났다. 이러한 역사적 격동기에 태어난 만해는 고향의 서당에 다니면서 당시의 정규적인 한문교육을 받았는데 소학에서 시작하여 18세까지 사서오경을 모두 배웠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틈틈이 희곡, 소설, 기타 잡서들도 읽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가 18세 되던 해인 1896년 고향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수년 간 불교서적을 읽었다. 출가의 원인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당시 고향 충주에서도 갑오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이 전개된 것으로 보아 역사적 격변기의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설악산 오세암에서 5~6년간 머무는 동안에 불경에 대하여 공부하는 한편 여러 가지 근대적 교양서적과 접촉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그는 문명의 진보와 합리주의를 믿는 계몽주의자가 되었다. 이 무렵 그는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설악산을 내려와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갔으나 심한 박해로 인해 다시 귀국하여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이런 방황의 과정을 겪은 끝에 그는 드디어 승려로서의 자기를 정착시켰다. 이때가 1905년 1월 26일이다.
그 후 만해선사로부터 법을 이어받아 법명을 용운, 법호를 만해라 하였다. 이후 수년간 불교활동에 전념하였다. 불교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양계초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등을 접하면서 근대 사상을 다양하게 수용했으며, 1908년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참고 자료
김삼웅 저, 《만해 한용운 평전》, 시대의창, 2011
만해사상실천선양회 편, 《만해 한용운 시전집》, 참글세상, 2016
최유진 저,《철학논집 제6집》, 경남대학교 철학과, 1991.
김양수, 신동한, 윤병로, 전규태 편저, 《동서고전 200선》, 한국교육평가원. 1994.
구인환 엮음,《동서고전1》, 신원문화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