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 최초 등록일
- 2007.07.11
- 최종 저작일
- 2007.01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려사.
조선 초기 김종서(金宗瑞:1390~1453) ·정인지(鄭麟趾:1396~1478) 등이 세종의 교지를 받아 만든 고려시대의 역사책.
목차
★ 제1장 초기의 정치가와 장군
★ 제2장 중기의 자주가와 사대가
★ 제3장 무신집권기의 무신과 문신
★ 제4장 몽고지배기의 항몽가와 친몽가
★ 제5장 말기의 혁명가와 절의가
★ 제6장 유학자, 승려, 도참가와 역사가
★ 제7장 직언가와 아첨가
★ 제8장 예술가, 점복가, 의사, 양리·혹리와 효자·열녀
본문내용
세가(世家) 46권, 지(志) 39권, 연표 2권, 열전 50권, 목록 2권 총 139권으로 되어 있다. 1392년(태조 1) 10월 태조로부터 이전 왕조의 역사책을 만들라는 명을 받은 조준(趙浚) ·정도전(鄭道傳) 등은 1396년 37권의 《고려국사》를 만들어 바쳤다. 정도전과 정총(鄭摠)이 책임을 지고 예문춘추관의 신하들이 실무를 담당하였다. 이들은 우선 통사인 이제현(李齊賢)의 《사략》, 이인복(李仁復) ·이색(李穡)의 《금경록》, 민지(閔漬)의 《본조편년강목》 등의 체재를 참고하면서, 역대 고려실록과 고려 말의 사초(史草)를 기본자료로 삼았다. 이것은 그 내용과 서술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1414년 하륜(河崙) ·남재(南在) ·이숙번(李叔蕃) ·변계량(卞季良)에게 공민왕 이후의 사실을 바로잡고, 특히 태조에 관한 내용을 충실히 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1416년 대표자인 하륜이 죽자 중단되었다. 이를 잇고자 하는 논의는 세종의 즉위 후 왕 자신에 의해서 제기되고, 마침내 1419년(세종 1) 9월 유관(柳觀)과 변계량 등에게 일을 맡기니, 이들은 1421년 정월에 다 만들어 올렸다. 이리하여 본래의 사초와 달리 마음대로 고쳤던 곳이 바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국제관계가 고려된 부분에서는 유교적이고 사대적인 관점이 오히려 강화되어 제칙(制勅) ·태자(太子) 등을 교(敎) ·세자(世子) 등으로 고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 책도 반포되지 못하다가 1423년 12월에 다시 유관과 윤회(尹淮)로 하여금 이 부분을 실록에 따라 바로 쓰도록 하고 있다. 1424년 8월 이 일은 끝났지만, 이번에도 변계량의 반대로 발간되지 못하였다.
세종은 1431년에 《태종실록》이 편찬된 것을 계기로 《고려사》를 다시 쓰는 작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1442년 8월에 신개(申槩) ·권제(權踶)가 《고려사전문(高麗史全文)》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바쳤다.이 책은 1448년에 양성지(梁誠之)의 교감을 거쳐 일단 인쇄되었으나 편찬자 개인과 관련된 곳이나 청탁받은 곳을 제멋대로 썼기 때문에 배포가 곧 중지되었다. 세종은 다시 1449년에 김종서 ·정인지 ·이선제(李先齊) ·정창손(鄭昌孫)에게 명령을 내려 내용을 더 충실하게 하면서 이런 잘못을 고치게 하였다. 김종서는 드디어 1451년(문종 1) 8월에 이 책을 완성하였다. 이번의 작업에서는 늘어난 내용을 효과적으로 담기 위하여 체재를 바꾸는 일도 아울러 이루어져, 최항(崔恒) 등이 열전, 노숙동(盧叔仝) 등이 기(紀) ·지(志) ·연표, 김종서 ·정인지 등이 교감을 맡았다. 열전에서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내려져 있어서 비판이 거셀 것을 우려하여, 1452년(단종 즉위)에 조금만 인쇄하여 내부에 보관하다가, 1454년 10월에 이르러 비로소 널리 인쇄, 반포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