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흑산』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정약전, 황사영 등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다룬다. 당시 부패한 관료들의 학정과 성리학적 신분 질서의 부당함에 눈떠가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해도 진인’이 도래하여 새 세상을 연다는 '정감록' 사상이 유포되고 있었다. 서양 문물과 함께 유입된 천주교는 이러한 조선 후기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한 지식인들의 새로운 대안이었던 셈이다.
김훈의 "흑산"은 19세기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천주교 박해 사건인 '병인박해'와 그 과정에서 벌어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소설의 제목인 "흑산"은 전라남도에 위치한 흑산도를 가리키며, 이곳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사람들이 숨어들었던 장소이자,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됩니다.
소설의 중심에는 '하멜표류기'를 쓰고 천주교 신자로 활동하다가 박해를 받는 실존 인물인 정약전을 비롯해, 박해 속에서 고난을 겪으며 신앙을 지키려 했던 여러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하지만, 당시 조선 사회는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고, 천주교 신자들은 반역자로 취급되었습니다.
사학죄인(邪學罪人)이 되어 곤장을 맞고 귀양길에 오른 정약전은 뱃길이 끊겨 포구에서 몸을 추스르고, 압송에 나선 장교와 아전과 역졸들은 당연한 듯 주막에서 무전취식과 교접으로 시간을 보내며 뱃길이 다시 열리길 기다린다.
바람 불어 뱃길이 열리던 날 황포 돛은 복어의 배 만큼이나 부풀고 성난 파도는 뱃속에 든 모든 것들을 버리고 가라한다.
뱃길을 잡느려 바닷물의 색깔을 살피느라 쓰라린 눈을 항아리에 담긴 연잎에 고인 이슬로 눈알을 씻는 사공.
사공은 말한다. “높은 파도가 일면 대가리를 파도가 오는 정면으로 돌리고 납작 수그려야 산다”고.
천주교를 학문으로 받아들여 목숨을 부지한 사학죄인과 거대한 파도가 서역으로부터 밀려와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염원하며 종교로 받아들인 순교자들의 스토리가 긴박하게 흐르고 있다.
자명하고 또 마땅한 것이 있다. 거창한 이념에 기대지 않더라도 모든 인간이 존엄한 생명으로서 평등하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고 하나하나의 인격들이 자존과 행복을 향하여 사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자명하고 마땅한 것들이 자명하고 마땅한 것으로 여겨지기까지의 길은 뭇 사람들의 좌절과 희생으로 닦여진 길이다. 김훈의 소설 『흑산(黑山)』은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 혹은 뒤돌아 비켜섰던 사람들의 소망과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200여 년 전, 사학죄인들-천주의 말씀을 믿은 죄로 능지처참을 당했던 젊은 선비 황사영과 죽음의 길에서 한발 물러서 흑산도(黑山島)로 유배당한 정약전, 그리고 삶도 죽음도 이름 없었던 민초들의 이야기는 길이 끊어져 보이지 않는 곳(黑)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음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Ⅰ. 서론
김훈은 오랫동안 기자로 활동하다가 불혹을 넘은 나이에 소방관의 죽음을 다룬 소설 『빗살무늬의 추억』으로 등단하여 이후, 『칼의 노래』를 비롯하여,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의 선 굵은 역사 소설을 주로 썼다. 많은 역사 소설들이 그러하듯 김훈의 소설 역시 현 시대나 어떤 상황에 비유되기도 하고, 그런 순간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가로서의 김훈은 언제나 그러한 추측을 일축하려는 듯, 감정 표사를 절제하고 그 시대의 군중들을 담담한 필치로 묘사하는 것에 집중한다.
『흑산』은 알려진 것처럼 천주교박해로 흑산도로 유배를 간 정약전과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신유박해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그러나 어떠한 정치적 시선이나 판단을 경계한다. 선과 악의 경계도 없고 소설이 가지는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소설적 장치로 독자를 현혹시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직 단단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쌓아올려 만든 문학이라는 성벽처럼 차고 단단한 품새로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본론에서는 『흑산』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들과 주목할 점을 위주로 적어보았다.
Ⅱ. 본론
1. 신유박해
『흑산』은 소설 속에 정확한 년도가 드러나지 않으며, 이야기의 흐름도 시간 배열로 되어 있지 않고 기억에 따라 이동하며 흑산으로 유배된 정약전과 육지에 남은 나머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이어지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의 시기를 담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책 마지막에 나온 연표로 이 사건이 정조가 죽고 갑작스럽게 즉위하게 된 순조를 수렴청정하던 정순왕후가 천주교 신자들을 색출하여 처벌하라는 명을 내린 신유박해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설의 중심사건이 신유박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중심 되는 인물들은 ‘천주교도와 박해자’, 그 천주교도 안에서도 고문에 이기지 못하고 끝내 ‘배교한 자와 순교자’로 다시 나뉜다. 그런데 이 기묘한 이분법은 상당히 눈길을 끈다. 여느 소설에서처럼 선과 악의 이분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조선 시대 실제로 일어났던 천주교 박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는 등장인물들의 행동,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해서 천주교를 믿게 되었고 어떠한 방식의 비밀 조직을 통해 서로의 믿음을 유지했는지 못지않게 당시 시대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서 그 점이 기억에 남았다. 당시 중앙 집권 세력, 지방 지배 세력이 어떻게 백성들을 착취하고 괴롭히면서 그들의 지배 권력을 유지했고 또한 백성들은 어떻게 몸부림치면서 그 시대를 견뎠는지를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천주교라는 종교 이전에 당시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끔찍한 세상에서 종교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하거나 타인을 구제하려고 했던 건 인간의 감정으로 비추어보아, 외부의 시선으로 비추어 보아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 작품에서 종교는 취향이나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은 조선에서 천주교를 박해했던 역사, 조선에서 천주교 포교를 탄압과 잔인한 형벌로 막았던 그 시절의 역사를 소설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정말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황사영을 비롯한 정약전, 마노리, 육손이, 강사녀, 박차돌 등 종교가 퍼져 나가고 또한 이들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인물들이 수시로 등장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죽음으로 퇴장한다. 그나마 흑산으로 유배 온 정약전이 유배 이후에는 다른 인물들과 비교될 수 있을 정도로 소설이 끝날 때까지 평온한 삶을 누린다. 이 작품에서 정약전은 배교한 인물이었다. 뭐랄까. 나는 이 소설의 사실감에 놀랐다. 이 소설은 천주교 박해 시절 있었던 일을 소설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황사영이 토굴에 숨어 있다가 잡혀가서 사형을 당한 것과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되어 살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 다수의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픽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실제 인물들처럼......<중 략>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얼굴이 있다. 타인과 함께 공생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얼굴, 그 이면에 존재하는 타인을 이용하여 나의 이득을 취하려는 얼굴, 우리는 이러한 두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은 현재와 과거를 아우르며 존재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를수록 인간은 타인을 배려하는 얼굴보다는 타인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얼굴이 더 많이 존재하게 되었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일인데도 불구하고, 그 얼굴이 존경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거대한 세력에 대항하려면 힘을 모아야한다. 쉬운 예로 정치세력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국민들은 서로 힘을 모아 현재 상황을 헤쳐 나가야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인간이 고통을 어떻게 견딜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뇌를 뚫고 지나가는 아픔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난 여운은 한마디로 ’온통 머리 속에 죽음의 장면들이 고통의 장면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기분 이랄까?‘ 특히 박차돌의 누이 한녀의 죽음을 묘사한 장면은 극히 처참하여 분노가 일고 너무 불쌍하여 소름이 돋는다. 그동안 편히 살자 모든 것에 불감증이었던 몸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 옥사장은 똥과 꿀을 썩어서 박한녀의 터진 볼기에 비벼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벌레들이 달려들어 박한녀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파먹었다. 박한녀의 몸에서 고열이 났다. 박한녀의 일생에서 가장 따뜻한 온도였다. 다음날 저녁에 박한녀는 죽었다. 벌레들이 죽은 몸뚱이 속에 들끓었다. (흑산 239P )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면면을 보라. 박차돌, 박한녀, 아리, 강사녀, 마노리, 육손이, 김개동, 길갈녀, 장팔수, 창대, 조풍헌, 흑산진 수군별장 오칠구, 오동희. 마음 편히 일생을 살아낸 사람이 없다. 맹자는 항산(恒産)에서 항심(恒心)이 생긴다고 했다. 경제력의 빈곤이 천주교 박해의 첫번째 이유일 것이다. 그들의 슬픈 이야기다.
<딸은 구경꾼들 사이를 돌며 구걸을 해서 엽전 다섯 개를 모았고 제 주머니 속에 있던 엽전 다섯 개를 합쳤다. 딸은 엽전 열 개를 망나니에게 주며 제 어미를 먼저 죽여주기를 빌었다. 망나니가 강사녀를 먼저 베었다. 강사녀는 딸이 온 줄 모르고 죽었다>
그들 민초들이 세상을 살아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자네 올 때가 되었는데 하고 있었네 물길이 어려웠겠구먼, 여기도 바람이 심했어>
흑산진 수군별장 오칠구가 묻는다. 이에 흑산으로 정약전을 옮겨 준 문풍세가 말한다.
<다 내맡기고 삽니다. 뻗대면 바로 죽지요. 바다나 뭍이나 마찬가지요>
뻗대면 안 된다. 비겁하다 불쾌하게 여기지 말라. 살아남기 위한 민초의 논리다.
당시 천주의 사태의 본질이 굶주림에 있다는 것은 다음에도 나온다.
<사학은 반상의 구분이 없어서 양반 사학죄인의 하인배들은 대개 물들어 있다. 그래서 달아난 양반 사학쟁이를 잡으려면 먼저 그 하인배들을 잡아서 매를 내리면서 캐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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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독후감, 인생역작] 흑산을 읽고(김훈 지음, 부제 길과 섬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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