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 근대 여성작가 시리즈 지하련의 <도정>.
<도정>은 1946년 발표된 지하련의 단편소설이다. 지하련은 이 작품으로 최초의 조선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해방 직후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 아래, 지식인인 주인공을 통해 사회주의 문제와 이념적 갈등을 묘사한 작품이다.
누군가 나에게 어느 시기의 소설을 가장 좋아하느냐 묻는다면 나는 별 고민 없이 1930-40년대의 작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식민 지배 아래 있다는 역사적 배경과 당대 사람들이 받았던 고통, 당시의 지식인들이 느꼈을 무기력함 등이 맞물려 어느 시대의 문학 작품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문학적 특수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당대의 문체가 좋았다. 서울 사투리가 섞인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좋았고, 문학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실험적으로 등장한 독특하고 어려운 서술자의 언어들이 좋았다. 현대에는 쓰이지 않는 낯선 언어와 표현이 뒤섞여 하나의 문장을 구성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일례로 나는 한때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라는 단편집을 정말 좋아했다. 책까지 구매해서 학교에 가져다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는 현학적이고 이해할 수 없다고 욕할 수 있겠지만, 정말 나는 순수하게 그러한 이유로 그 당시의 문학 작품들을 좋아했다.
소설은 역에서 들려오는 ‘해방’에 대한 소식으로 시작된다. 일제 치하에 억압받던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천황이 항복하면서 해방을 맞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천황의 항복소식을 듣고 만세를 외칠 때 주인공 석재는 복잡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천황이 항복을 했기 때문에 불쌍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며 기쁘지 않냐고 묻던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던 주인공은 기쁘다고 말했지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해방이라는 기쁨에 왜 석재는 이러한 반응을 보였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설이 점점 더 전개될수록 석재가 해방 전 적극적으로 활동하자 못했던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과연 석재를 겁쟁이라 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신념이 있고, 이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 신념은 다양한 경험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때로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이정표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이 항상 이 신념에 따른 선택만을 하며 살 수는 없다. 때로는 내면의 더 강한 욕구가, 외부의 환경이 이를 방해하기도 한다. 두려움으로 인해 옳지 않은 것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는 과연 겁쟁이라 부를 수 있는가?
지하련의 소설 <도정>에는 일제에 대한 항거로 6년 옥살이를 한 뒤 나와 소극적 자세로 투쟁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사회주의자 석재의 모습이 그려진다. 석재는 자신을 “옹종한 주제에, 그래도 소위 그 양심이란 어금길에서 제 깐엔 스스로 고민하는 척 몸짓하며 살아 온 사람들” 중의 한 명이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회의 기류를 쫓는 기회주의자인 기철과 같은, “영예로워지면 질수록 흉악해지는” 사람들이 “공산당”을 만들었음에 의문을 던진다.
해방 공간의 소설 전체를 통해서 한국 문학 세계의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1946년에 발표된 지하련의 「도정」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된 배경은 1945년으로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직후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은 주인공인 석재가 허영과 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동기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과 보석으로 석방된 후 6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자기 자신을 지속적으로 반성하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6년 동안을, 아무리 보석으로 나왔다 치고라도 어쩌면 산 사람으로 그렇게도 죽은 듯 잠잠할 수가 있었던가 싶고, 또 이리 되면 그 자신에 대하여 어떤 알 수 없는 염증을 느낀다기보다도......<중 략>
이 소설에서의 주인공인 석재는 자신에게 염증을 느끼기보다 먼저 비웃음이 나는 인물이다. 자신의 옷차림에서 군청 고원을, 방금 퇴직 군수로 되어 있는 장인을 연관시켜 떠올린다. ‘기철’과 함께 술 먹던 날의 기억을 회상한다. 기철은 광산을 한다고 돈을 두름박 처럼 차고 내려왔다. 나(석재)는 스스로가 배신자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도 나를 잘 보는 눈이 마음 어느 구석에 들어있다. 악덕한 나를 보는 눈이다.’ 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비난한다. 주인공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비판을 놓지 않는다. 오랫동안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숨어 다니고 감옥에 다니며 말이다. 이십대엔 스스로 어떤 비범한 특수 인간으로 설정하고 싶어서, 삼십대엔 신망을 한 몸에 모으는 가장 양심적인 인간으로 자처하고, 그러다 이젠 자신의 구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시늉이 아니냐며 스스로를 비판하는 모습을 그린다.
내겐 아직 너무 먼 도정 - 지하련의 도정을 읽고 -
지하련 ‘도정’에 나타난 자기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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