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6.10.30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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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전통 음식의 후식중 한과에 대한 소개를 담았습니다.
목차
1.한과의 유래와 역사
2. 한과의 우수성
3. 한과의 종류
4.한과의 영양
5.한과의 보관방법
6.한과의 관광상품화 방안
본문내용
1.한과의 유래와 역사
한과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과자를 말하는데 과정류(菓釘類)라고도 하며 외래의 과자와 구별하여 한과류(韓果類)라고도 한다. 본래는 생과와 비교해서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라는 뜻에서 조과류(造果類)라고도 하고, 우리나라말로는 과줄이라고 한다.
한과는 곡물가루에 꿀,엿,설탕들을 넣고 반죽하여 기름에 지지거나 과일,열매,식물의뿌리등을 꿀로 조리거나 버무려서 굳혀만든 과자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농경문화권으로 일찍이 신석기시대부터 농경이 시작되었다. 한과는 대부분 곡물이 주재료로 되기 때문에 곡물 이용전 한과의 이용도 그역사가 상당하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한과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수없다. 한과의 주재료는 곡물과 꿀과 기름이다. 식품역사상 이 세가지가 모두 갖추어져 사용되어진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삼국시대에는 군중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춤을 추는 농경의례와같은 의식이 있었는데 이때 다른 음식과 함께 한과를 나누었다고 본다. 그리고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된 점 등으로 추정해볼 때 한과의 존재를 유추해 볼수있다. 숭불사조가 고조되었던 통일신라에서 음다풍속과 육식절제풍습이 존중됨에 따라 채식음식의 발달과 함께 곡류를 주재료로 한 한과류의 발달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시대의 후기로 가면 다과상, 진다례, 다정모임 등의 의례행사가 형성 되는데 이에 따라 한과류도 급진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신문왕 3년(683) 왕비를 맞이할 때 납폐품목으로 쌀, 술, 장, 꿀, 기름, 메주 등이 있었는데 과정류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으므로 과정류를 만들었다고 추정할 수 있으나 문헌의 기록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고려의 한과류 중에서는 특히 유밀과가 발달되어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 크고 작은 행사에 반드시 고임상(高杯床, 큰상)으로 쌓아 올려졌다. 또한 왕의 행차 시에는 고을이나 사원에서 유밀과를 진상하기도 했다. 이 밖에 충렬왕 22년에는 세자와 원나라 공주와의 혼례식에 이 유밀과가 사용됨으로써 폐백음식의 하나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또한 이즈음 외국과의 교역이 빈번해지면 서 유밀과가 `고려병`이란 이름으로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어 그곳 사람들로부터 절찬을 받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고려시대 유밀과의 과다소비로 유밀과의 재료인 곡물, 꿀, 기름 등을 마구 허비함 에 따라 그 폐해를 막기 위해 명종22년 (1192년)과 명종9년(1179년)에 각각 유밀과의 제조 금지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이로 보아 유밀과가 상당히 애용되던 과자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과류의 하나인 다식은 고려에서 유밀과처럼 크게 성행하지는 않았으나 국가의 연례, 국가대연회 등에서는 쓰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성호사설」에 따르면 이 다식 은 중국에서 대소용단(大小龍團)이 변한 것이며, 국가의 제전(祭典)에 쓰였는데 본래는 제사에 점다(點茶)를 쓰던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한과류는 더욱 널리 보급된다. 이것은 임금이 받는 어상(御床) 및 각종 궁중잔칫 상을 비롯하여 한 개인의 통과의례(평생의례) 및 다과상차림과 세찬(歲饌)에는 반드시 진설되어야 할 필수음식으로 자리를 잡았고 또 왕실을 중심으로 한 상류층의 평상 기호음식으로 매우 각광을 받으면서 발달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