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장의 기원과 한국의 고대 장 및 장의 역사(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와 영향
- 최초 등록일
- 2014.05.26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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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장의 기원
2. 한국의 고대 장
3. 장의 역사
(1) 간장의 역사
(2) 된장의 역사
(3) 고추장의 역사
(4) 청국장의 역사
4. 장의 영향
본문내용
1. 장의 기원
한국의 장 제조의 발단은 콩의 경작시기와 가공용구인 항아리형 토기가 있던 때에 둘 수 있다. 상고시대 우리 나라의 강토이던 부여 국토는 콩의 원산지의 하나이고 BC 2000년경의 유적에서 콩, 팥이 발견되어 이 무렵부터 콩을 경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장류를 비축하는 그릇이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는 항아리형 토기는 농업 발단기의 것인 황해도 지탑리 주거지에 있었고 그 이후부터는 어느 유적에서나 거의 예외 없이 출토되고 있다. 문헌상의 자료는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서 ‘고구려는 스스로 장양(醬釀)을 잘한다’고 이르고 있는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여기에 말하는 "장양"은 술빚기, 장담기와 같은 발효성 식품의 가공기술을 총칭하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 장양을 잘 한다고 함은 장양의 솜씨가 좋았음을 뜻하며 좋은 솜씨는 오랜 숙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콩을 경작하던 무렵부터 시작한 장담기의 솜씨가 오랜 숙달기를 거쳐 상기 기록인 서기 전․후기 에 이르렀을 때에는 좋은 솜씨에까지 이르렀다고 해석할 수 있다.
2. 한국의 고대 장
한국 고대 장의 제조법이나 종류에 대한 한국의 문헌은 아직 없어 확인하기 어려우나 삼국사기 신문왕 3년 기록에 있는 폐백품목에 강과 시가 있어 그 일단을 알게 한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조에, 장군이 급보를 받고 출전할 때, ‘자기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돌아보지 않고 50보쯤 가다가 말을 세우고 집의 장수를 가져오게 하여 맛을 보고 그 맛이 아직 유구하다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수는 장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여기에서 장의 맛이 길흉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던 우리의 풍습이 이미 이때도 있었음을 말한다. 진정사효선쌍미조에는 ‘어머님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도 자식의 차마 하지 못할 일인데 더구나 배장과 수일의 양식을 모다 싸 가지고 간다면 천지가 나를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장이 밥과 함께 먹는 가장 기본음식이었음을 알리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같이 장은 우리 상대의 식생활에서부터 기본식품의 구실을 하였으나 고대장의 실상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일본의 고분문화가 전개 할 때 그곳에 곡장(穀醬), 육장(肉醬), 초장(草醬)이 있었고 그 중 곡장은 고구려에서 건너간 것이어서 고려장(高麗醬)이라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